[연극]내달 3일 개막 '거기'…술취한 무대 진솔한 얘기 술술

  • 입력 2002년 9월 10일 18시 32분


술을 마시고 있는 '거기' 출연자들
술을 마시고 있는 '거기' 출연자들
요즘 서울 대학로 동숭홀 5층 연습실에서는 ‘술판’이 한창이다. 배우들은 대낮부터 대본을 앞에 놓고 연신 술잔을 기울인다. 10월3일 동숭아트센터 소극장에서 막을 올리는 ‘거기’(원제 The Weir)의 무대가 술집이기 때문.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코너 맥퍼슨이 1997년에 발표한 ‘거기’는 코미디와 호러, 멜로가 공존한다. 1999년 로렌스 올리비에상 최우수 희곡상을 수상한 이 작품은 ‘20세기 10대 희곡’ 중 하나로 선정됐다.

원래 극의 배경은 아일랜드지만 국내 공연에서는 강원도로 바꿔 한국적인 연극으로 각색했다. ‘저녁’을 ‘즈낙’으로, ‘일부러’를 ‘역부러’ 등 걸쭉한 사투리를 활용한다.

시골의 한 카페에서 지역 주민들과 서울에서 내려온 한 여인의 ‘하룻밤 토크쇼’가 열린다. 이들은 괴담을 나누며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는 게 줄거리. 배우들은 술을 마시며 한사람씩 무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장우(박진영)는 이웃집 할머니가 아흔 넘어 돌아가신 뒤에도 집 주위를 서성였던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춘발이(이대연)도 옆 집 진경이가 자신을 예뻐해주던 아주머니의 혼령을 본 사연을 털어놓고, 진수(민복기)는 공동묘지에서 귀신 만난 얘기를 해준다.

김정(박지아)은 서울에서 강원도 촌으로 내려와 ‘귀신 나온다’는 집을 구입한 미모의 여인. 그는 귀신을 보았다는 딸의 갑작스런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

극은 웃기다가 섬뜩하고 슬퍼진다. 공포, 그 괴기스러움 속의 슬픔을 담아냈기 때문. 모두들 한가지씩 아픈 과거를 갖고 있었던 이들은 귀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그것 때문에 더 이상 마음 아파하지 말라며 서로를 다독인다.

병도(오용)는 김정을 배웅하며 이렇게 말한다. “강원도의 질(길)은 똑바루만 가면 되요. 그래서 우리 강원도 촌놈들은 빠꾸르(되돌아가는 것을) 몬(못)해요.” 과거에 연연해하지 말고 이제 미래를 보자는 말이다.

연출가 이상우씨는 “연기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실제 공연에서는 배우들이 회당 맥주 20병, 총 32회 공연에 총 640병 정도를 마시게 된다”며 “사소하고 섬세하고 따뜻한 사람들의 심리를 코믹하면서 때로는 가슴 뭉클하게 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원중 김승욱 박원상 최덕문 전혜진 등이 더블 캐스팅됐다. 11월3일까지. 화수목금 오후 7시반, 토 오후 4시반 7시반, 일 오후 4시반(월 쉼). 1만2000∼2만원. 02-762-0010.

황태훈기자 beetle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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