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한권의 책에 잠 못이루는 시카고…'독서프로그램' 참여 열기

  • 입력 2002년 9월 4일 18시 12분


시카고 도서관과 로고(왼쪽). 독서토론에 참가중인 시카고 주민

시카고 도서관과 로고(왼쪽). 독서토론에 참가중인 시카고 주민


한 권의 책이 온 도시의 시민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다리가 되고 있다.

미국 시카고의 공공도서관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하나의 책, 하나의 시카고(One Book, One Chicago)’는 시애틀 뉴욕 로체스터 등 여러 도시에서 이뤄지는 독서 프로그램 중 가장 성공적인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한 이 캠페인의 성공 요인은 단순히 1권의 책을 선정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고 시 당국과 도서관, 대학, 기업, 시민들이 연계하는 ‘독서 토론’프로그램으로 차원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기 때문.

시카고의 공공도서관은 지금까지의 캠페인 과정과 성과를 담은 시즌별 최종보고서를 인터넷상에 공개했다.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청소년과 성인들이 같은 시기에 같은 책을 읽고 활발한 토론을 함으로써 ‘독서 문화’의 싹을 틔워 보자는 것. 다양성을 지닌 거대도시 시카고에 맞는 적절한 책을 선정하는 일은 가장 힘든 문제였다. 하지만 모든 시민이 같은 책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 효과를 극대화시킨다고 판단해 하나의 작품을 선정하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공공도서관 사서들과 프로그램 자문위원회가 정한 책 선정 원칙은 △시카고 시민들에게 보편적인 이슈를 다룬 책 △성인과 청소년 모두에게 적합한 책 △독서 토론, 작가 방문, 영화, 연극 등 다른 행사와 쉽게 연계될 수 있는 요소를 지닌 책 등이다.

이런 원칙 아래 최초로 선정된 책은 인종갈등을 다룬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인종문제와 관용을 주제로 한 책이라는 점이 선정 이유였다. 올해 봄 시즌 권장도서는 노벨평화상 수상작가인 엘리 위셀의 소설 ‘밤(Night)’을 선정해 인류의 폭력 문제를 화두로 삼았으며, 이번 가을 시즌에는 이민 1세대의 역경을 그린 윌라 캐더의 ‘나의 안토니아(My Antonia)’를 선정했다.

책이 선정되면 도서관에서는 전문가들이 책 토론 모임을 여는 한편 시당국은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독서 가이드를 제작해 배포했다. 또 서점들은 이 책을 눈에 잘 띄는 곳에 진열해 주었다. 스타벅스 커피점에서는 시민들이 독서 토론을 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고, 참여하는 독자들에게 커피와 빵을 무료로 제공했다. ‘앵무새 죽이기’의 경우 주말마다 도서관에서 영화를 상영했고 변호사협회는 책의 줄거리를 토대로 모의재판을 열기도 했다.

독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오래동안 소설을 읽지 않았는데 책읽는 기쁨을 알게 해줬다. 바로 다른 책을 또 읽으려고 한다.”(제임스 윌리암스) “이전에 미처 생각지 못한 방법으로 이웃과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됐다.”(새일라 필라이)

시카고의 ‘독서혁명’은 미국 전역에서 관심을 불러 일으켜 비슷한 프로그램들이 다른 도시에서도 속속 생겨났다. 시카고 공공도서관은 이에 자신감을 얻어 어린이 독서프로그램인 ‘독서에 열광하자(Get Wild About Reading)’도 2월부터 시작했다.

‘하나의 책…’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국내에서도 MBC ‘느낌표’에서 독서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이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석권하는 등 사회에 미치는 파장도 크다. 하지만 책을 안읽던 사람들을 ‘독자’로 끌어들였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지만 진행 방식과 구성, 책 선정 과정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대한 논란도 있다. 그런 점에서 한 권의 책이라도 그 ‘깊은 맛’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시카고의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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