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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7월 25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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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단지 사람들의 여름방학
-여름방학 때 외국으로 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단지 내에 사는 사람들은 한달짜리 어학 연수는 보내지 않는다.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대신 교환교수로 가는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떠나는 경우가 많다.
-월드컵에서 한국이 4강에 올랐을 때 학교에서는 기말시험을 한동안 연기하려 했었다. 하지만 미국으로 떠나는 학생들이 비행기표를 끊어 놓았다며 항의하는 바람에 이틀만 연기했다.
-우리 가족도 이달 말 안식년을 맞은 남편을 따라 미국 시애틀로 갈 예정이다.
-남편이 이번 여름 학회 참석차 미국 보스턴에 갈 때 작은 아이를 딸려 보낼 계획이다. 미국에는 가족 동반으로 열리는 학회가 많다. 아버지가 학회에 참석하는 동안 호텔에서 아이를 봐주기도 한다.
●교육열은 서울보다 더하다
-이곳 사람들은 교육 수준이나 경제력이 비슷하기 때문에 자녀의 성적에 따라 부모의 사회적 지위가 결정된다.
-서울처럼 입시학원이 발달돼 있지 않아 부모들이 나서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엄마가 영어, 아빠는 수학과 과학을 맡는다. 나도 아이들 영어를 봐주고 있다. 고3 수험생인 큰 아이는 성문 종합영어로 문법을 다지고 요즘엔 토플 공부를 한다. 작은 아이에게는 문법과 토익을 가르쳐준다. 남편이 민간 연구소에 다니고 있어 수학을 정기적으로 봐 줄 시간이 없다. 수학과 과학은 단지 내 이공계 전공자인 학부모에게 맡기고 대신 그 아이들의 영어를 내가 맡고 있다. 40대 후반의 연구원 연봉이 대개 5000만원 이하여서 과외를 시킬만한 여력도 없다. 그래서 품앗이 과외를 하는 집이 많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이웃집 학부모와 팀을 짜서 내가 수학을 가르치고 이웃집이 영어를 가르쳤다. 중학생이 돼서는 남편이 수학과 과학을 봐주다가 요즘엔 선행학습을 시키느라 학원에 보내고 있다. 미국에 1년간 가 있을 예정인데 한국 학교의 수학 진도를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직히 학원 수업에 별 만족을 못 느낀다. 미국에서는 남편이 철저히 수학을 맡아주기로 했다.
-이곳은 서울에 비해 정보도 부족하고 과외 인프라도 부실하다. 솔직히 아이를 안심하고 맡길만큼 실력있는 과외 교사를 찾기 어렵다. 유명한 과외 선생은 단지 내 아줌마인 경우가 많다. 엄마들이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다니는 학생들보다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다고 좋아한다. 과외비는 주 2회를 기준으로 초등학생이 팀당 30만∼40만원, 중학생은 40만∼50만원, 고교생은 50만∼60만원이다. 1개팀에 학생은 3, 4명이다.
●학교와 학부모
-학부모들은 학교 자원봉사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편이다. 나는 대학에서 도서관학을 전공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 도서관에서 자원 봉사 활동을 한다. 2년전 학급 수가 모자란다고 학교 측에서 도서관을 없앴는데 학부모들이 도서실 만들기 운동을 벌여 성공했다. 지금은 장서 수가 1만권을 넘는다.
-나는 큰아이가 대덕 초등학교에 다닐 때 특기적성교육의 무임 강사 자격으로 영어를 지도했다. 당시 영어 수업이 가능한 학부모가 20명이었는데 3학년부터 6학년까지 매주 1시간씩 영어를 지도했다.
-시험볼 때 교사와 함께 시험감독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문제를 훑어보면 잘못 출제된 경우가 가끔 눈에 띈다. 그럴 때는 시험이 끝난 후 교무실로 조용히 찾아가 학교 측에 의견을 전달한다.
-학부모들 가운데 특정 분야의 박사학위 소지자가 많아 교사들과 눈에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교사가 지도하면 “우리 아빠가 식물학 박사인데 선생님이 틀렸대요”하며 교사들을 당황하게 하는 아이들이 있다.
-학기 초에 담임이 ‘제발 무슨 일이 생기면 교육청으로 바로 가지 말고 저와 상의해 주세요’ 하더라. 문제가 생길 때 바로 교육청에 문제를 제기하는 학부모들이 많은가 보다.
●미국 시민권과 복합 감정
-이곳 아이들은 미국을 먼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시민권을 가진 아이들이 많고 아버지가 수시로 미국에 드나들기 때문이다. 큰 아이는 중학교 1학년 1학기를 마친 뒤 쉽게 미국 유학을 가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결국 한 학기를 마치고 억지로 데리고 들어왔지만 한국 학교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떼를 써서 외국인 학교에 보냈다. 전 과목을 달달 외우고 날 잡아 전쟁치르듯 시험을 보는 게 싫다고 하더라.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면 든든한 것은 사실이다. 한국에 적응을 하지 못할 경우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미국의 대학으로 진학하고 싶어할 경우 시민권자로서 학비를 저리로 장기융자할 수 있기 때문에 학비 걱정 없이 보낼 수 있는 것도 큰 혜택이다.
-미국 시민권자인 우리 아들은 한국에서 살겠다고 한다. 아이가 사춘기 때 미국에서 살았는데 학교 우등생들이 상대도 해주지 않아 상처를 받았나 보다.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했지만 무시당했다고 한다.
-나의 경우도 처음 1년간은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해줘 좋았는데 오래 살면서 보니 겉으로만 친절한 척할 뿐 절대 끼워주지 않았다. 어느날 아이가 학교에서 백인 아이들과 싸움을 했는데 편파적으로 사건을 처리하는 것 같아 찾아가서 우리 남편이 박사 과정에 있고 나도 이곳에서 오래 살면서 공부도 많이 했다고 영어로 또박또박 얘기했더니 그제서야 공손해지더라.
-이공계쪽도 한국인이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분명하다. 미국에서 세탁소나 식료품점을 경영하면서는 살 수 있겠지만 밥만 먹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아이들이 미국의 대학을 다니더라도 한국에서 정착해 살았으면 한다.
●대덕밸리에서 살리라
-아이들이 충청도 사투리를 쓰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 오래 살면서도 나와 아이들 모두 서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거다.
-90년에 대전에 처음 왔을 때는 연구 단지 밖에서 살았다. 그런데도 주변에서는 나를 ‘단지 내 여자’라고 불렀다. 아무리 오래 살아도 대전 시민으로 동화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일하고 싶지만 자리가 없다. 이 지역 사람이 아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서울에서 살기도 어렵다. 이곳 30평대 아파트값이 1억원대인데 서울에 가면 이 돈으로 같은 평형대 전세도 얻기 힘들다.
-그래도 남편, 아이들과 둘러앉아 매일 저녁을 같이 먹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떠나기는 싫다. 서울 가서 살라고 하면 못할 것 같다.
▽대덕밸리 주부 4명 참석자▽
이문희씨: 45세. 대학 영어 강사. LG연구소 연구원과 1남 1녀. 딸은 대덕고 3, 아들은 대덕고 1학년. 미국 위스콘신주 메디슨에서 7년, 메릴랜드주 프레드릭에서 1년6개월 거주. 아들은 미국 시민권자.
신혜원씨: 42세. 주부. LG연구소 연구원과 2남. 큰아들 대덕고 1, 작은 아들은 금성초등학교 5학년. 미국 아이오와주 에임스에서 5년 거주.
신보미씨: 41세. 상담소 상담원. 한국화학연구원 연구원과 2남. 큰아들은 대전국제학교 9, 작은 아들은 금성초등학교 5학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2년, 위스콘신주 메디슨에서 1년반 거주. 큰아들은 미국 시민권자
박순희씨: 40세. 주부. 충남대 교수와 1남 1녀. 아들은 대덕중 1, 딸은 금성초등학교 4학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6년반 거주. 남매 모두 미국 시민권자.
대전〓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
| 대덕중학교 3학년 7반 34명 학생들의 부모 직업 | |||||||
| 교수 | 연구원 | 자영업 | 기타 | ||||
| 부 | 모 | 부 | 모 | 부 | 모 | 부 | 모 |
| 6 | 17 | 1 | 4 | 4 | 7 | 29 | |
| 대덕 중학교에서 외국 거주 경험이 있는 학생수 | ||||
| 국가 | 학생수 | |||
| 미국 | 215 | |||
| 일본 | 23 | |||
| 캐나다 | 19 | |||
| 독일 | 16 | |||
| 영국 | 15 | |||
| 기타 | 16 | |||
| 계 | 304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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