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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7월 23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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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은 독일인들이 주로 장편 소설을 가방에 넣고 휴가를 떠나는 달. 최근 독일 서점가의 ‘여름 휴가 특수’는 ‘마틴 발저 논쟁’이 장식하고 있다. 발저는 노벨상 수상작가 귄터 그라스와 더불어 독일 문단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작가.
사건의 발단은 독일의 출판사인 주어캄프가 마틴 발저(75)의 소설 ‘어느 문학 평론가의 죽음’ 교정쇄를 각 언론사에 보내면서부터. 이 책은 한 소설가가 악평에 분노한 끝에 평단의 제왕으로 불리는 ‘유태인’ 문학평론가를 살해한다는 줄거리를 담고 있다. 이 평론가는 수년간 TV의 문학 프로그램을 주재하며 문학계에 권력을 무제한 행사하는 인물로 묘사되고 이름도 ‘에를쾨니히’(마왕·魔王)로 설정돼 있다.
대부분의 독일인들이 경악한 것은 당연한 일. 누구의 눈에나 ‘에를쾨니히’는 저명한 유태인 평론가이자 독일공영방송 ZDF TV의 ‘문학 사중주’ 프로그램을 수년간 진행해온 마르셀 라이히-라니츠키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영향력이 큰 일간지 프랑크푸르트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맨 먼저 이를 공론화하고 나섰다. 이 신문은 출간되기 전 이 소설의 주요 내용을 수록하기로 한 결정을 철회했으며 발행인인 프랑크 쉬르마허가 직접 “이 책은 반유태주의의 허접쓰레기로 가득찬 증오의 책”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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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의 주요 인사 및 지식인들도 이에 가세했다. 일간지 타게스슈피겔의 전속평론가 헬무트 카라세크는 이 책을 ‘짜증나는 추악한 선동전단’이라고 질타했다. 라이히-라니츠키와 더불어 독일 평단에 큰 영향력을 미쳐온 평론가 발터 옌스도 “어떻게 이런 책이 쓰여지고 그 내용을 출판사가 일간지에 미리 제공했는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한 발저의 반응은 “내 의도와 다르다”는 것. 그는 “나는 사회에서 매장되고 싶어할 정도로 미친 사람이 아니다. 나는 문화예술계에서 무제한의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고 있는지를 묘사하려 한 것이지, 반유태주의와 이 작품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문단 일각에서는 이 소설에 쏟아지는 비난에 대해 “발저가 자초했다”고 보고 있다. 발저는 그동안 여러 작품과 연설 등을 통해 “독일은 이제 세계 대전의 가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을 공공연하게 제기해 왔다.
이 책은 논쟁 덕분에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출간 첫날인 6월 26일 하룻동안 5만부가 나갔으며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독일 사이트(www.amazon.de)에서도 종합 베스트셀러 5위, 순수 문학 부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평론가 살해’라는 동일 주제를 다룬 소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