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멋과 낭만의 ‘사랑 메신저’

  • 입력 2002년 7월 18일 18시 09분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노중상봉 (路中相逢)'의 일부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노중상봉 (路中相逢)'의 일부
성하(盛夏)의 계절, 에어컨 선풍기가 넘쳐난다해도 부채는 역시 필수품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부채는 단순한 필수품 차원을 넘어선다. 부채는 멋스러움을 상징하는 하나의 장식물이다.

부채엔 부채를 만드는 장인의 치열한 땀이 배어있고, 서화가들의 글씨와 그림을 그려넣거나 화사한 장식을 곁들이면 그것은 그대로 하나의 예술품이 된다.

부채는 이처럼 낭만적이다. 여기엔 동서양 예외가 없다.

우리에겐 전통적으로 부채의 8덕목이 전해온다. 그 첫째 덕목은 당연히 ‘더위를 쫓아주는 덕’. 그리고 ‘땅에 앉을 때 방석이 되어주는 덕’ ‘햇볕과 비를 막아주는 덕’ ‘파리 모기를 쫓아주는 덕’ ‘저 멀리 방향을 가리켜주는 덕’ ‘여인이 옷 갈아 입을 때 가려주는 덕’ ‘흥겨울 때나 노래 부를 때 장단 맞춰주는 덕’ ‘빚쟁이 만났을 때 얼굴을 가려주는 덕’ 등. 부채의 용도를 8덕목으로 정리한 옛사람들의 낭만과 해학이 무릎을 치게 만든다.

18세기 프랑스의 부채에 그려진 남녀 모습. 체스를 두고 있는 여성이 부채로 얼굴을 가린채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사진제공=화정박물관]

유럽에서 부채는 귀부인의 장식품이자 연애의 필수 도구였다. 특히 17, 18세기 접는 부채를 이같은 용도로 즐겨 사용했다. 11세기 고려에서 중국으로 건너간 접는 부채는 16세기 들어 포르투갈인들에 의해 중국에서 유럽으로 전해졌고 이후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7세기부터 유럽 여성들은 부채를 연애 감정을 표현하는 ‘은밀한 메시지’로 사용했다. 그것은 일종의 ‘부채 언어’였다. 자신의 연애 감정을 드러내기 어려웠던 여성이 부채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표현했던 것이다.

17세기 런던과 파리에서는 여성에게 부채 언어를 가르치는 아카데미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부채가 만들어낸 다양하고 풍부한 사랑의 언어는 다음과 같다.

‘부채를 오른쪽 빰에 댄다〓예’ ‘부채를 왼쪽 뺨에 댄다〓아니오’ ‘천천히 부채질을 한다〓저는 이미 결혼했어요’ ‘오른손으로 부채를 들어 얼굴을 가린다〓나를 따라오세요’ ‘왼손으로 부채를 들어 얼굴을 가린다〓당신과 친해지고 싶어요’ ‘손가락으로 부채의 가장자리를 따라 움직인다〓당신과 이야기하고 싶어요’ ‘왼손으로 부채를 만지작거린다〓누군가 우리를 감시하고 있어요’ ‘부채를 접어 상대에게 내민다〓저를 사랑하세요?’ ‘부채를 눈 쪽으로 가져간다〓미안합니다’ ‘부채를 넓게 편다〓기다리세요’ ‘왼손에 부채를 들고 펼친다〓와서 얘기 좀 해요’ ‘부채를 머리 뒤로 가져간다〓저를 잊지 마세요’.

부끄러운 듯 뜨거운 사랑을 갈구하는 유럽 여성들의 눈빛이 눈에 선하다.

▼화정박물관서 ‘동서양 부채전’▼

유럽 여성들이 사용했던 사랑의 부채는 지금 ‘유럽과 동아시아 부채전’이 열리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 화정박물관에 가면 만날 수 있다(9월29일까지, 02-798-1954, 2287-2990).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부채의 8덕목▽

1.더위를 쫓아주는 덕

2.방석이 되어주는 덕

3.햇볕과 비를 막아주는 덕

4.파리 모기를 쫓아주는 덕

5.방향을 가리켜주는 덕

6.옷 갈아 입을 때 가려주는 덕

7.노래 할 때 장단 맞춰주는 덕

8.빚쟁이 만났을 때 얼굴 가려주는 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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