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일기]큰 산, 아버지

  • 입력 2002년 5월 2일 14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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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아주 큰 산.

불효자인 나의 정신적 지주이신 큰 산. 고개를 젖히고 한참을 올려다 봐야만 꼭대기 정상이 보일락말락한 아주 큰 산. 언제나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큰 키에 곧은 자세로 힘차게 뚜벅뚜벅 걸으셔서 ‘영국신사’라는 별명을 얻으셨던 큰 산. 무뚝뚝하나 웃음을 간직하셨던 나의 아버지.

내가 중학교 2학년때인 1973년, 보릿고개인 여름날 쌀을 아끼기 위해서 엄마가 밀국(칼국수)을 만들어 저녁식사로 할머니도 드시고 온 식구들이 다 먹고 있는데 나는 밀국이 먹기 싫다고 밥을 달라며 안 먹으니까 아버지께서 회초리로 내 엉덩이를 때리셔서 그 날 저녁도 굶고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던 일이 있습니다.

아버지도 가장으로서 식구들에게 흰 쌀밥을 먹이고 싶지, 점심도 아닌 저녁으로 밀국을 먹이고 싶었을까요. 적지않은 논, 밭 임야에 머슴 두고 농사지으며 두메산골 작은 그 동네에서는 부자라고 하는데, 끼니도 이을 수 없는 논농사, 밭농사에 교육공무원으로서 가족들의 끼니를 걱정해야하는 박봉의 궁핍한 현실이 화가 나셔서 가한 분노의 매였으리라 생각됩니다.

평생을 초 중학생 교육에 몸 바치시고 충남 태안군 만리포 중학교에서 1997년 정년퇴임하신 뒤에는 태안 향교에서 학생들에게 윤리 강의를 하는 틈틈이 농사일도 하며 퇴임 전 처럼 변함없이 의욕적인 생활로 건강하셨는데….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골수암이라는 병마로 고통 받으시는 아버지를 생각하면 저는 자꾸 눈물이 납니다.

아버지. 빨리 건강을 회복하셔서 출퇴근하시던 집앞 내뚝길을 힘차게 뚜벅뚜벅 영국신사처럼 걸어오시던 큰 산 같은 당신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의 커다란 손으로 이 세상의 끈을 힘차게 꼭 잡으세요. 꼬옥….

유혜재(주부·인천 계양구 효성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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