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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3월 19일 17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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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한 나라씩을 정해 행사를 치러온 조직위원회는 이 해에 동양권에서는 처음으로 한국을 선택해 ‘한국의 해’로 지정, 한국의 화랑을 대거 초청했다. 이와는 별도로 미술제가 열리는 기간에 프랑스 정부는 홍라희 호암미술관장에게 예술문학훈장인 ‘코망되르’를 수여했다.
프랑스 미술계와 정부의 이같은 ‘호의’에 일부 호사가들은 “한국 대기업들의 미술관 건립붐을 의식해 한국 시장에 좀더 많은 미술품을 팔려는 의도가 깔려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반면 대기업이 주축이 돼 그동안 추진해온 한국과 프랑스간의 예술 문화 교류의 성과에 대한 답례라는 해석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한국의 미술계를 양적으로 질적으로 지탱해온 것은 대기업들이었다. 그리고 각 기업에서 미술쪽을 책임졌던 이들은 대부분 오너 집안의 여인들이었다. 이들은 든든한 재력을 바탕으로 미술관을 운영하면서 한국의 대표적인 컬렉터로 자리잡았다.
선두 주자는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인 홍 호암미술관장. 홍관장은 생전에 4000여점의 미술품을 수집한 고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어 수 만점의 국내외 작품을 추가로 구입, 미술관을 채웠다. 미대를 졸업한데다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고미술까지 배운데 힘입어 전시기획이나 컬렉션에서 상당한 실력자로 자리매김했다.
99년에는 파리 로댕미술관,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등에 이어 세계 8번째로 로댕 전문 갤러리인 ‘로댕 갤러리’를 열어 로댕의 조각 2점을 구입, 전시했다.
금호미술관을 운영하는 박강자 관장도 소장 대상 작품을 선정하는데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금호미술관은 많은 작가들이 전시회를 갖고싶어 하는 공간. 박성용 금호 명예회장의 여동생인 박관장은 작가들에게 최대한 전시의 기회를 주고 전시 작가의 작품 가운데 1점씩을 구입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관장이 선택한 작품들은 대부분 작가 본인이 아끼는 ‘명품’들이지만 작가들은 미술관과의 관계를 의식해 별 말 없이 내준다는 것. 금호 컬렉션의 질을 보증하는 얘기다.
성곡미술관은 김석원 쌍용그룹 회장의 부인인 박문순씨가 관장을 맡고 있다. 박관장은 알려진대로 성품이 조용하고 차분해 대외적으로 활동이 활발하진 않은 편. 하지만 젊은 작가들에게 박관장과 성곡미술관은 인기가 높다. ‘한국적인 현대 미술 정립을 위해 젊은 작가를 양성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젊은 작가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주고 그들의 작품도 적극적으로 구입해주기 때문.
고 최종현 SK회장의 부인인 고 박계희 여사가 관리해오던 워커힐미술관은 아트센터나비로 새롭게 태어났다. 박관장 시절 워커힐 미술관은 앤디 워홀의 국내 최초 개인전을 비롯해 피카소, 오펜하임 등 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거장들을 국내에 소개해 왔다.
2000년말 워커힐 호텔에 있던 기존 미술관은 문을 닫았고 대신 서울 종로구 SK본사 사옥 4층에 아트센터나비가 문을 열었다. 미술관 살림은 최태원 SK회장의 부인이자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인 노소영씨가 맡고 있다. 노씨는 기존의 순수 미술 중심에서 멀티미디어 작품 쪽으로 영역을 전환하고 있다.
선재미술관을 운영하며 한국 미술계에서 적잖은 영향력을 행사하던 김우중 전 대우회장의 부인 정희자씨는 현재 관장직에서 물러난 상태. 대신 미국에서 미술을 공부한 딸 김선정씨가 서울의 선재아트센터와 경주 선재미술관의 부관장직을 맡아 노소영씨와 함께 ‘2세대 미술관장’의 기수로 활동하고 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