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여백으로 눈 표현' 이인하 설경전

  • 입력 2001년 12월 23일 17시 42분


청전 이상범(靑田 李象範·1897∼1972)의 손녀인 이인하(55·사진)는 눈(雪)을 잘 그리는 한국화가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눈을 그리지 않고 눈을 표현한다. 멀리서 보고 눈인가 싶어 작품 앞으로 다가가 화선지를 잘 들여다보면 눈이 없다. 대개는 흰색으로 눈을 표현하는데 반해 이씨는 아무 색도 칠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 것이다.

“눈을 흰색으로 칠하면 눈이 아닙니다. 눈은 눈색이지 흰색이 아니라는 말이죠. 눈을 그리지 않고 그냥 내버려둔 채 주변만 색칠해 표현하면 그게 오히려 더 진짜 눈 같습니다.” ‘눈 없는 눈 그림’을 그리는 작가 이인하. 그의 독특하고 매력적인 설경(雪景) 그림이 서울 종로구 관훈동 아트사이드에서 30일까지 전시된다.

눈을 그리지 않고 눈 주변을 그리는 이러한 화법을 작가는 ’양각화법(陽刻畵法)’이라 부른다. 밝은 것은 밝은 색으로 칠하지 않고 주변을 어둡게 칠하는 방식, 혹은 강조하고자 하는 부분은 철저히 여백으로 처리하고 주변부를 색칠해 나가는 방식이다. 실제 그림을 보면 흰색으로 칠한 눈보다 더 살아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물감은 미세하게나마 입자가 있습니다. 이것으로 눈을 그린다고 생각해보세요. 눈이 아닙니다.”

이씨의 눈(目)에 비친 눈(雪)의 색은 다양하다.

“응달의 눈은 파랗고 양지의 눈은 은빛으로 반짝입니다. 눈은 덮어놓고 흰색이 아닙니다. 물의 색도 계절이나 깊이에 따라 달라 보이듯 눈의 색도 천차만별입니다.”

이같은 양각화법을 구사하는 작가는 이씨가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이 기법을 가르쳐달라고 편지를 보내오는 일본 화가가 있다고 한다. 02-725-1020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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