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건호 선생은…反독재-민주화 헌신 참언론인

  • 입력 2001년 12월 21일 17시 51분


21일 타계한 송건호(宋建鎬) 선생은 군부 독재의 언론 탄압에 맞서 싸운 대표적 언론인 중 한사람으로 꼽힌다.

74년 동아일보 편집국장으로 취임한 고인은 10월 23일 서울대 농대생들의 유신반대시위를 기사화했다는 이유로 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그동안 꾸준히 유신독재에 맞서왔던 동아일보 기자 180여명은 그 이튿날 “자유언론에 역행하는 어떠한 압력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취지의 ‘동아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했다.

그해 말부터 75년 초에 걸쳐 동아일보는 ‘백지광고 사태’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75년 7월 동아일보를 떠난 고인은 재야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전두환(全斗煥) 정권 시절인 84년에는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결성했고 85년 재야 인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월간지 ‘말’을 창간했다.

88년 한겨레신문의 초대 사장과 발행인을 맡았으며 이 신문사 회장을 지냈다. 99년에는 금관문화훈장을 받았으며 2000년에는 한국기자협회에 의해 가장 존경하는 생존 언론인 중 한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고인은 80년 정보기관에서 당한 고문의 후유증으로 90년대 중반 이후 대외 활동을 거의 하지 못했으며 최근에는 합병증에 시달려왔다.

고인은 왕성한 저술활동을 했다. 그가 기획한 ‘해방전후사의 인식’(80년)은 당시 학계에서 외면했던 해방 공간을 파헤쳤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밖에 ‘민족지성의 탐구’ ‘한국 현대인물사론’ 등 20여권의 저서를 남겼다.

장남 준용씨는 최근 격월간지 ‘시민과 언론’에 기고한 글에서 “아버님은 ‘현실의 길’이 아닌 ‘역사의 길’을 가는 것을 인생의 근본으로 꼽았다”고 밝혔다.

<이승헌기자>ddr@donga.com

▼[송건호 선생 빈소표정]각계인사 발길 줄이어▼

송건호 선생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중앙병원 장례식장에는 21일 오후부터 각계 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이날 낮 12시경 직접 빈소로 전화를 걸어 부인 이정순(李貞順·71)씨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한 뒤 “정부가 할 수 있는 모두 것을 동원해 돕겠다”고 밝혔다.

오후 5시반경 동아일보 김병관(金炳琯) 전 명예회장과 간부 10여명, 남궁진(南宮鎭) 문화관광부 장관이 빈소를 찾아 고인의 타계를 아쉬워했다. 이어 권오기(權五琦) 동아일보 신문박물관장, 연합뉴스 김근(金槿) 사장, 오홍근(吳弘根) 대통령 공보수석 등이 조문했다.

권오기 관장은 “고인은 모든 소소한 일상에서 올곧게 살아온 사람이었고 정말 ‘아주 좋은 의미’의 양반이었다”고 술회했다.

이밖에 한국신문협회 최학래(崔鶴來) 회장과 한국 ABC협회 최종률(崔鐘律) 회장, 이웅희(李雄熙) 전 국회의원 등 각계 인사의 조문이 이어졌다.

오후 2시경 빈소를 찾은 한완상(韓完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고인은 한국사회의 민주화와 언론 발전을 위해 일한 진정한 언론인이었다”고 말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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