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秋 波(추파)

  • 입력 2001년 11월 15일 18시 34분


秋 波(추파)

波-물결 파 熟-익을 숙 凋-시들 조 霜-서리 상 叱-꾸짖을 질 傲-거만할 오

秋는 禾(화)가 火(화·햇살)를 받아 잘 영글었다는 뜻이며 波는 물수(수·물)의 皮(피·껍질), 즉 수면 위의 ‘물결’을 말한다. 따라서 秋波라면 가을 날 호수 위에 잔잔하게 이는 물결이 된다.

가을은 結實(결실)의 계절이자 衰落(쇠락)의 계절, 그래서 만물이 이 때가 되면 열매를 맺고, 이어 차츰 시들어 생명을 마감하게 된다. 즉 가을은 成熟(성숙)과 凋落(조락·시들음)을 동시에 상징하는 계절인 셈이다.

가을을 이렇게 본 것은 東西洋(동서양)이 같다. 중국이나 우리는 가을이 풍성한 결실을 보장해 준다고 해 백성을 먹여 살리는 천자의 德(덕)에 비유했다. 반면 모든 생명체를 凋落으로 인도한다고 해 ‘무서운 계절’로 보기도 했다. 한편 영어에서 가을을 ‘fall’로 표현하는 것도 凋落과 관계가 있다. 낙엽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특히 그것을 재촉하는 서리(霜)의 존재야말로 威嚴(위엄)과 공포의 상징이었다. ‘秋霜(추상)같은 叱責(질책)’이니 ‘서릿발같은 명령’이 그것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형벌을 관장하는 장관을 秋官(추관)이라고 불렀다. 지금의 法務部長官(법무부장관)에 해당된다.

그러나 문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가을은 또한 기가 막히는 계절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가을은 세계적으로 유명하지 않은가. 높고 파란 하늘과 불타는 단풍, 여기에 황금 물결을 이루는 들판, 유유자적 날아가는 기러기 떼…. 어느 것 하나 詩想(시상)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우리의 옛 조상들은 가을을 두고 天高馬肥(천고마비·하늘은 높고 말은 살찜)니 燈火可親(등화가친·등불을 가까이 해 글읽기에 좋음), 征雁紅葉(정안홍엽·기러기 날고 단풍이 듦)의 계절이라고 노래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看過(간과)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역시 가을의 상징이랄 수 있는 菊花(국화)와 호수의 물이다. 菊花는 싸늘한 기운을 받아 더욱 함초롬하고 물빛은 유난히 푸른색을 더한다. 그래서 詩人墨客(시인묵객)들은 가을을 菊傲水碧(국오수벽·국화가 뽐내고 물이 비취처럼 푸름)의 계절이라고도 했다.

시인들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가을 호수의 물을 美人의 눈에 비유하기도 했다. 여기에 가을 바람이 스치면 잔잔한 물결(波)이 이는데 그 모습 또한 일품이 아닌가. 마치 美人이 잔잔한 눈웃음을 짓는 것 같기도 하다. 그래서 후에 ‘秋波’는 님을 향해 보내는 미인의 ‘눈웃음’이 되었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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