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고교 학생회장 선거 '시끌'…당선때 2천만원 기부 요구

  • 입력 2001년 7월 1일 18시 40분


서울 강남의 한 고등학교는 최근 학생회장 선거를 앞두고 인터넷에 오른 글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았다. 이 사건은 학교생활에서 매사를 대학입시와 연관해 득실을 따지려는 고교생들의 척박한 세태를 드러냈다는 점에서 씁쓸함을 던져주고 있다.

5월 말 인터넷 모 사이트의 몇몇 홈페이지 게시판에 오른 이 글은 ‘학교측이 학생회장 후보들에게 당선될 경우 1000만∼2000만원을 학교에 기부할 것을 입후보 조건으로 요구’했으며 ‘자신도 입후보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어서 하지 못했다’는 내용.

자신을 이 학교 학생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몇몇 학생을 영문 머리글자로 표기하면서 ‘대학입시에서 가산점을 얻기 위해 학생회장이 되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 글은 곧 전교생에게로 퍼졌다. 글 내용의 진위를 놓고 학생들 간에 뒤숭숭한 분위기가 계속됐고 교사들간에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등 파장이 커졌다.

영문으로 표기됐지만 그 대상이 누군지 쉽게 알 수 있었고 지목된 한 학생은 충격을 받아 학교에 결석하기도 했다. 한 학생의 어머니는 학교에 수차례 전화를 걸어 “사이버수사대에 의뢰해서라도 글을 올린 사람을 잡아달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사태가 걷잡을 수 없게 커지자 학교는 학생회장 선거공고를 하지 않았고 매년 6월 중순에 실시하던 학생회장 선거는 무기 연기되고 말았다.

학교측은 입후보 조건으로 돈을 요구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 학교의 학생선거 담당교사는 “회장이 되면 ‘리더십 전형’ 등으로 대학에 갈 수 있기 때문에 ‘정적(政敵)’을 음해하려 했던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그러나 일부 학생들은 지난해 학생회장의 부모가 학교 시설물을 만드는 데 2000만원을 낸 일이 있다며 “돈 없으면 학생회장도 할 수 없다”고 스스럼없이 말하기도 했다.

한 교사는 “비록 근거 없는 소문으로 판명났지만 이번 소동이 대학 전형방법이 바뀐 뒤 고교 학생회장 선거와 관련된 왜곡된 단면을 보여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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