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꼴찌 탈출" 자존심부터 살려라

  • 입력 2001년 4월 15일 18시 41분


◇읽기-쓰기-셈 못하는 초중고생 5만여명◇

“선생님, 저도 풀었어요.” “아주 잘했어요. 이 문제도 풀어봐요.” “아이, 왜 이렇게 안 풀리지….” “자, 손가락을 이용해서 같이 해볼까.” 11일 오후 2시경 서울 등서초등학교 2층의 한 교실과 이 교실 옆 교직원 휴게실. 대부분의 학생은 이미 귀가했지만 일부 학생들이 모여 열심히 수업을 듣고 있었다. 휴게실에 옹기종기 모여앉은 3학년 학생들은 손을 책상에 올려놓은 채 손가락을 이용한 셈법으로 두자리 덧셈을 하거나 교재를 펴놓고 그림을 보면서 네자리 덧셈문제를 푸는 등 8명 모두 제각각 다른 문제를 풀고 있었다.

◇학습부진아 현황-효과적인 지도법◇

김모군(9)이 자랑하듯 문제를 푼 답안지를 내놓았지만 20문제 중 14개가 틀렸다. 또 불과 2, 3문제를 이어 풀지 못하고 한눈을 팔거나 장난을 치는 등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학생도 눈에 띄었다.

교사는 수시로 학생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문제를 푸는 학생을 칭찬하고 장난치는 학생을 웃음으로 달래면서 수업을 이끌어갔다.

수십명이 모여 있는 여느 교실에서는 보기 힘든 풍경이었다. 한때 ‘나머지 공부’로 불리는 등 부정적 인식 때문에 학생들이 기피하던 방과후 보충수업과 유사한 학습부진아들의 보충수업은 의외로 즐겁게 진행되고 있었다.

공부를 못하는 것은 ‘죄’가 아닌데도 공부를 못하면 부모부터 자식을 구박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아직 부진아에 대한 교육환경과 체계적 지원이 부족하지만 최근 개발된 부진아를 위한 교재를 활용해 ‘탈(脫) 꼴찌’를 노리는 학생과 학교가 늘고 있다.

◇'학력 미달' 실제론 훨씬 많아◇

▽부진아 얼마나 많은가〓지난해 교육부가 국회 교육위원회에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학년초를 기준으로 읽기와 쓰기를 못하는 초중고교생 학습부진아가 5만여명에 이른다.

초등학생 가운데 읽기와 쓰기가 안되는 학생이 9025명, 셈하기 능력이 부족한 학생이 1만3020명이었다. 중학생은 각각 6984명과 9432명이고 고등학생은 4133명과 6531명이었다.

그러나 이 통계는 ‘절대적 학습부진아’를 뜻하며 ‘교육과정에 따른 학업성취 수준과 목표 달성 여부’ 등을 기준으로 삼아 정상적인 교육과정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진아는 훨씬 많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등서초교 홍순식 교장은 “학력평가에서 전체의 70% 이하를 잠정 기준으로 삼아 학습부진아반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담임교사가 선별해 처지는 학생들을 학습부진아반에 보낸다”고 말했다.

◇낮은 학습동기-환경결손 등 탓◇

▽왜 생기나〓학습부진은 선천적 요인으로 공부를 제대로 하기 힘든 학습장애와 다르다.학습부진은 정상적 교과과정을 따라가지 못해 학습 결손이 쌓여 학습동기가 낮고 학업성취도도 낮은 것을 말한다. 능력 결여와 흥미 상실, 환경 결손 등 학습부진에는 다양한 요인이 있다. 학생의 성격 태도 학습습관 등은 주로 가정 학교 또래집단 등 환경에 큰 영향을 받는다.

교육과정을 앞서 배우는 선행학습 열기도 학습부진아를 만들어내는 한 요인이다.

등서초교 김인애 교사(45)는 “학원에서 선행학습을 하면서 제대로 배우지도 못하면서 학습에 흥미를 잃어 부진아가 되는 학생이 많다”고 지적했다.

◇상취감 고취-집중력 키워야◇

▽효과적인 지도〓무엇보다 학생들이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면밀히 배려하는 교육환경이 중요하다.

등서초교 박군희 교사(53)는 “교사가 개인별로 세심하게 관찰하고 적절히 배려해야 교육효과가 높다”면서 “특히 교과내용을 지도할 때 학습동기를 느낄 수 있도록 성취감을 맛보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밖에 야영이나 대화 프로그램 등 체험인성교육과 학습부진아 교육을 연계해 집중력 부족과 자신감 결여 등 학습부진아들의 공통적인 문제를 치유하는 노력도 중요하다.

<김경달기자>d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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