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대학원생 무크지 '모색' 창간호 발간

  • 입력 2001년 1월 16일 19시 07분


“88년 처음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마르크스주의가 있었어요. 93년 전공을 바꿔 다시 대학에 들어가자 프랑스의 포스트모던 철학이 유행하고 있었어요. 그리고 97년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는 아무 것도 없었지요.”(중앙대 연극학과 박사과정 박영은씨)

거대담론이 사라지고 인문 사회과학의 위기가 과거 어느 때보다 뚜렷한 지금, 지식사회의 미래를 짊어질 대학원생들은 어떻게 자신을 이해하고 자신의 미래를 전망하는가?

최근 창간된 이색적인 무크지 ‘모색’은 중앙대 대학원 석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거나 졸업한 젊은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당사자들이 직접 현 대학원 사회가 처한 위기상황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해결책을 찾고 있다.

염정민씨(중앙대 정치학과 박사과정)는 창간호의 ‘학문후속세대의 일상과 정체성 형성’이란 글에서 “80년 5월 광주에서 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지는 집단적 저항의 기억을 공유하고 전선의 뒤에서 빚진 마음으로 학술연구에 몰두한 80년대 세대와 그렇지 않은 90년대 후속세대간에는 차이가 존재한다”며 “90년대는 형식적 민주주의로 치장한 적의 실체가 갈수록 모호해지고, 이념적 대안이 점점 사라져 가는 현실 앞에서 일상의 견고함이 더욱더 큰 무게로 다가오는 시기”라고 지적했다.

염씨의 논의는 대학원내의 일상적 파시즘을 분석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대학원내의 권위주의는 교수에 의해 일방적으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 권위에 대한 대학원생 스스로의 자발적 복종의 형태로 이뤄진다. 장기적 관점에서 대학원 제도를 개혁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내적으로는 일상의 공간에서 민주적 관계를 확보하려는 노력이 진행돼야 한다.”

오창은씨(중앙대 국문학 박사과정 진학예정)의 글 ‘대학원생들에게 미래는 있는가’는 어두운 대학원 현실을 고발하는 한 편의 르포다.

이 르포에 실린 이야기 하나. 현재 정보통신회사에 근무하는 P씨는 연세대를 졸업하고 대전에 있는 정보통신부의 ‘한국정보통신대학원’에 입학한 적이 있다. 석사과정 종반에 접어든 시점에 몇 번 교수와 충돌해 지도교수를 바꿨다. 새로운 지도교수와는 별 다른 충돌도 없었지만 석사과정을 포기해야 했다. 논문심사는 교수들이 하는 것이고 이전 지도교수와의 충돌은 끊임없이 자신의 진로문제에 있어 걸림돌이 됐던 것이다.

같은 글에 등장하는 H씨는 한양대 사회학과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그에 따르면 대학원 수업은 나이가 지긋한 교수들이 쉬엄쉬엄 해나가는 강의로 인식되고 있다. 따라서 임용된지 얼마되지 않은 젊은 교수는 대학원생들과 함께 공부하고자 하는 욕심이 있지만 그 욕심을 실현할 기회는 원천 봉쇄돼 있다. 심지어는 몇몇 노교수의 경우 해당 과목의 전공이 아닌데도 대학원 강의를 맡아 지도하는 경우도 있다.

무크지 ‘모색’의 편집장인 권경우씨(중앙대 영문학과 석사과정 졸업)는 “대학원의 현실을 고발하는 외에 흔히 사장되기 쉬운 대학원생들의 우수한 논문을 소개하는 것도 이 잡지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했다.

창간호에 실린 김영옥씨(중앙대 연극학 석사과정 졸업)의 ‘부토(舞踏)의 육체론’, 박소연씨(중앙대 과학학 박사과정)의 ‘인간의 얼굴을 가진 과학 기술을 향한 철학적 전략’ 등은 이들의 석사학위 논문을 재구성한 것이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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