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송년회 풍경]부부동반식사…산으로…"酒대신 情"

  • 입력 2000년 12월 5일 19시 11분


"송년회의 주인공은 ‘술(酒)’이 아니라 ‘정(情)’입니다.”

며칠 전 대학동문들로부터 이달 중순경 열릴 송년회 소식을 접한 임모씨(43·자영업)는 귀를 의심했다. 송년회 장소가 시내 특급호텔이 아닌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 재즈클럽이었기 때문. 행사내용도 완전히 달라졌다.

보통 2, 3차까지 질펀한 술자리로 이어졌던 예년과 달리 부부동반으로 식사하면서 국내외 유명 재즈 뮤지션의 공연을 감상하는 ‘우아한’ 프로그램이 등장했다. 게다가 ‘폭주(暴酒)는 사절’ 단서까지 붙었다.

임씨는 “40, 50대가 대다수인 회원들의 건강을 위해 ‘술로 시작해 술로 끝나는’ 송년회를 피하자는 의견이 반영된 것”이라며 “앞으로 뮤지컬이나 클래식 공연 등을 관람할 수 있는 송년회도 준비중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송년회의 풍경이 바뀌고 있다. 이른 저녁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술자리를 전전하며 왁자지껄하게 한 해를 ‘액땜’ 하는 대신 영화나 연극을 보거나, 유명연사를 초청해 미래에 대비하는 형태로 자리잡아 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색 모임〓시인 류시화씨 등 서울 대광고 문학반 출신 40여명이 연말이면 모교 소강당에서 가족동반으로 자작시 발표회를 겸한 송년회를 연지 3년째다. 회원인 한국투자신탁 이희주 홍보실 차장(39)은 “모교에서 송년모임을 가지면 회원들이 향수에 젖기도 하고 가족들이 너무 좋아한다”고 말했다.

‘실속파 송년회’도 눈에 띈다. 이달 중순경 대학 내 동문회관에서 송년회를 가질 예정인 Y대 경영대학원의 경우 경제학과 교수를 초빙해 경제위기 탈출법에 대한 강연을 듣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대부분 직장인이나 개인사업을 하는 회원들이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한 것.

이 대학원 출신의 한 사업가는 “예년 같으면 유명연예인이나 가수를 초청해 흥을 돋우는 엔터테인먼트성 행사 일색이었지만 올해는 크게 달라졌다”며 “냉장고나 TV 등 경품도 일절 생략했다”고 전했다.

▽형식 파괴〓바쁜 연말에 송년회가 몰린 탓에 송년회의 ‘시간파괴’도 두드러지고 있다. 붐비는 저녁시간보다 아예 자정에 모임을 갖는 경우가 늘어난 것.

회사원 김정환씨(31)는 “주말에 송년회가 몰리다보니 애를 먹는 경우가 많았다”며 “한산한 자정에 서울 강남이나 여의도 인근의 24시간 불고기 집이나 횟집을 찾아 소주 한 잔 기울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허리띠 죄는 기업〓회사 차원의 공식적인 송년회가 대폭 줄었고 돈 드는 카드나 연하장 대신 무료 인터넷 카드로 인사를 대신하는 경우가 크게 늘었다.

또 비싼 선물과 기념품 대신 저렴한 달력으로 감사의 마음을 대신하는 경우가 늘어 서울 을지로 인쇄골목이 모처럼 연말 특수를 누리고 있다.

달력 물량이 전반적으로 주문량이 20∼30% 가량 늘었다고 한다. 특히 특급호텔에서 흥청망청 대규모 송년회를 가졌던 벤처업계는 최근의 경기 침체와 여론악화 등을 감안, 간단한 점심이나 팀장 주재하의 조촐한 식사 모임 또는 산행 영화관람 등으로 송년행사를 대신하고 있다.

<정연욱·윤상호·조인직기자>jyw11@donga.com

▼관련기사▼

[송년모임 가기前에…]실속있는 송년모임 기초정보 몇가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