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토론]'박정희기념관' 건립에 대하여

  • 입력 2000년 7월 30일 18시 45분


《최근 정부가 ‘박정희대통령기념관’을 서울에 짓도록 하고 건립 비용 일부를 국고에서 지원하겠다고 밝히자 거센 논란이 일고 있다. 일부에서는 박전대통령의 근대화 업적을 기리고 동서 화합을 위해 필요한 조치라고 환영한다. 그러나 박전대통령의 과실이 적지 않고 공과에 대한 평가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마당에 국고까지 지원해 기념관을 짓는 것은 역사 왜곡이라며 반대하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찬성/국민정서 부합…공공성도 크다▼

‘박정희대통령기념관’ 건립에 관한 사안은 두 분야로 나눠 살펴봐야 한다. 하나는 기념관을 건립하는 일이요, 다른 하나는 건립비의 국고 지원에 관한 일이다.

전자에 관해서는 이미 사회적 동의가 이뤄진 상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논외로 한다. 문제는 후자에 관한 일이다. 국고지원은 해야 한다. 총 예산 700억원 중 모금액 500억원 외에 200억원만 국고에서 지원하는 것으로 돼 있다. 이는 전직 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 또 국고지원액 200억원 중 100억원은 이미 국회를 통과해 금년도 예산으로 확정돼 있다.

대통령기념관 건립사업은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다. 왜 박 전대통령의 기념관을 먼저 건립하느냐고 말할 사람도 있을 수 있다. 물을 건너기 위한 징검다리를 놓을 때에는 가장 큰 돌을 어디에 놔야 하는지를 먼저 판단해야 한다.

기념관 건립 문제가 제기되면서 각 언론기관에서는 여론조사를 실시했다. 99년 8월에 실시한 한 조사에서는 ‘가장 존경하는 대통령’으로 박 전대통령이 54.9%(2위는 4.2%)의 지지를 받았다. 99년 12월 젊은 세대가 주축을 이루는 네티즌을 대상으로 실시된 ‘금세기 한국 최고 인물’이 누구냐는 한 여론조사에서는 52.1%(2위는 16.6%)가 박 전대통령을 꼽았다. 그런가 하면 작년 8월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아시아 인물 20걸(傑)’을 선정한 바 있는데 한국인으로서는 유일하게 박 전대통령이 뽑혔다.

이 같은 일련의 사실을 감안할 때 그의 기념관을 먼저 세운다는 데 대하여 이의를 제기할 까닭이 없다. 왜냐하면 국민정서에 부합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고지원을 혈세 낭비 운운하는 것은 타탕하지 않다.

다음으로 박 전대통령 기념관은 인물 숭배를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공공성과 자조성, 국제성이 강조되고 있다.

우선 도서관 기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아울러 근대화 과정을 평가할 수 있는 사료관리실과 정책연구자료실 이외에 영상자료 및 정보실 등이 주종을 이루며(공공성), 건립비도 자체 조달 비율이 71%(700억원 중 500억원)를 넘는다(자조성).

그리고 월드컵경기장이 들어서는 서울 상암동을 기념관 부지로 정한 이유는 국제화와 세계화의 추세에도 부응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제3세계 국가에 학습참고 열람실로서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봉사적 의의도 크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국제성).

대통령기념관에 관한 외국의 일반적 사례는 사료보존이 돼 있는 경우, 거의가 반관반민의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을 감안한다면 박 전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계획은 별 무리가 없는 편이다.

따라서 적극 추진돼야 하고 모금성과도 좋아서 장차 제2, 제3의 대통령기념관이 마련됨으로써 어린이들로 하여금 훌륭한 인물상 묘사를 스스로 해나갈 수 있도록 그 가능성이 더해 가기를 바란다.

김유혁<단국대 명예교수>

▼반대/국가정신 위배…역사에 맡겨야▼

이른바 ‘박정희대통령기념관’ 건립에 대한 국가적 배려가 이순신장군이나 세종대왕 같은 민족사의 위인들에 대한 배려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

200억원에 이르는 국가 재정을 지원할 뿐만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 건립위원회 명예회장직을 맡았으며, 2년 뒤에는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장소에 기념관 부지까지 내줄 모양이다.

국가적 기념관 건립을 지원할 정도의 인물이라면 상식적으로 다음 두 가지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우선 그런 인물은 당장 현재 존립하고 있는 대한민국 국가에 대해 ‘국가적으로’ 기릴 만한 ‘실질적’ 업적을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한 주권국가가 그 이름으로 추모할 인물이라면 미래까지 ‘역사적으로’ 지속될 만한 정신적 가치를 지녀야 할 것이다. 따라서 한 인물에 대한 국가적 평가는 거꾸로 그 평가를 통해 국가의 문화적 수준이 평가된다.

이런 기준에 박정희 전대통령이 해당되는지를 놓고 논란이 많은 것은 어느 면에서 대단히 의아스러운 일이다.

문제는 ‘국민화합’이라는 명분을 내걸고 기념관 설립을 지원하는 현 집권층의 정치적 애매함과 가치관상의 불균형이다. 박 전대통령 시절 가장 부당하게 피해를 본 현직 대통령이 자신의 가해자를 위한 기념관 건립을 직접 챙기는 일이 말 그대로 죄인에 대한 용서와 화해의 몸짓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개인적인 용서와 화해라면 가해자의 무덤에 가서 위문하는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문제에 관해 생각해야 할 더 근본적인 측면이 있다. 그것은 우리 민주공화국의 국가 정신을 규정하는 헌법 전문의 기조이다. 이 전문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이념을 계승”한다는 구절로 시작한다.

분명한 것은 박 전대통령의 개인적 정치적 행적이 우리 헌법의 역사적 기본 정신을 선언하는 이 구절의 취지에 하나도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필자는 박 전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결코 후세에 미룰 일이 아니며, 우리 대한민국 국가는 이미 어떤 인물을 평가할 국가적 기준을 보유하고 있다고 확신한다.

이 헌법적 기준에 따르면 박 전대통령은 단지 독재자일 뿐만 아니라 우리 대한민국 국가정신에 철저하게 위배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만약 박 전대통령 숭배자들처럼 그의 통치실적을 부각시키고자 한다면 한 가지 물을 일이 있다. 왜 조선시대의 역대 임금 중에 우리는 하필 세종대왕을 기념하고, 조선 국가의 실질적 기틀을 마련한 태종 이방원은 기념하지 않는가?왜 그의 손에 타살된 정몽주는 조선시대에 길이 추모되고 태종은 그저 임금으로 남았는가?

박 전대통령을 그냥 역사에 내버려 두라. 반국가 사범이면서 역사에서 살아남지 못할 인물에게 그 어떤 국가적 기념관도 안된다.

현대 대한민국의 가치감각이 조선시대보다 못해서야 되겠는가.

홍윤기(동국대 교수·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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