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송기원의 '또 하나의 나']"雪山은 내게 말했다"

  • 입력 2000년 7월 21일 18시 33분


송기원은 시집 ‘그대 언살이 터져 시가 빛날 때’와 ‘마음 속 붉은 꽃잎’, 그리고 소설집 ‘월행’, ‘다시 월문리에서’를 펴낼 때까지 민중문학 혹은 민족문학의 길을 선도적으로 제시하는 활동을 펼쳤다. 이들 작품은 크게 보아 비극적인 개인사의 문제를 집단의 문제와 맞겨루면서 당대를 관통하는 진실의 모색이라고 요약될 수 있다. 또한 그는 이 시기 민주화운동의 실질적인 중추로서, 그리고 계간 실천문학의 주간과 사장으로서 자신이 펼치는 작품과 하나가 되기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90년대 중반 이후 시의 창작보다는 소설에 역량을 집중하며 민족민중의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소홀히 취급된 개인의 문제로 나아간다. 소설집 ‘인도로 간 예수’를 위시해서 장편 ‘너에게 가마 나에게 오라’, ‘청산’ ‘여자에 관한 명상’ 등등의 작품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들 장편소설들은 단편이나 중편에서 거두었던 성과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제 그는 새로운 작가로 거듭 태어나고 있다. 1년 전에 펴낸 ‘안으로의 기행’과 이번에 펴낸 ‘또 하나의 나’라는 장편을 통해서다. 이 두 작품집은 진정한 자아란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데 예전 중단편에서 보여주었던 농밀한 짜임새를 얻고 있으며 동시에 사물과 존재의 깊이를 눈부시게 추적하는 깊이와 넓이를 동시에 얻고 있다. 특히 이번에 펴낸 ‘또 하나의 나’는 인도 북부지방에서 네팔에 걸친 히말라야 일대의 장대하고 다채로운 풍광을 배경으로 인간내면의 탐구가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내면탐구의 작품들과는 달리 그 내면의 탐구가 ‘이웃’을 얻어 완성된다. 살아온 모든 것에 회의를 느끼고 자신을 히말라야 설산 어디에 방생하고 싶어하는 주인공은 그곳에서 기구한 운명을 지닌 한 여인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통해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배타적이기만 한 두 주인공은 여행의 와중에 서로의 ‘밑바닥’을 자기의 본모습으로 이해하기 시작하며 인간 존재의 본원은 물론 타인과의 진정한 관계에 눈을 떠간다. 자신이 겪은 비극적 체험을 잊기 위해 마지막까지 자신을 방기하던 영아라는 여인이 새로운 희망 속에 네팔의 티베트 난민 수용소에 봉사활동을 위해 떠나고 주인공 ‘나’는 영아라는 여인이 극단적인 고행을 감내한 다람살라를 거쳐 안나푸르나로 간다. 거기서 더욱 극심한 고행을 겪으면서 깨닫는 것은 인간에게 주어진 고통을 회피할 것이 아니라 그대로 수용해야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의 진정한 관계는 한쪽을 일방적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 아니라 서로가 대등한 관계에서 가슴이 따스하게 젖어드는 친애감을 갖고 교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그 깨달음의 끝에서 주인공은 일종의 해탈이며 자기완성인 ‘정신의 광대무변’을 체험한다. 그 숨막히는 과정을 따라가는 동안 독자들은 개인적 자아, 가족사적 자아, 사회적 자아가 모두 별개일 수 있지만 상생(相生)의 자리에 통합되지 않는 한 진정한 인간해방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선물로 얻게 된다. 결국 ‘먼 곳’ 인도를 헤매고 다니는 ‘나’나 ‘임영아’, 그리고 스님 ‘몽몽’은 모두 이 땅에서 오늘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하고 가치가 있는 지를 고민하며 묻고있는 우리 모두의 한 얼굴인 것이다.

강형철(문학평론가·숭의여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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