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내가 본 카스트로 "친근하고 자상한 74세 할아버지"

  • 입력 2000년 7월 20일 18시 45분


《올 1월 세계 침례교 총회장으로 선출된 한국의 김장환목사(66·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겸 극동방송사장)가 최근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세계침례교연맹(BWA)총회에서 총회장에 취임했다.

김목사는 총회기간에 세계적 종교교단의 지도자로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처음으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만났다.

해마다 각 대륙을 돌아가며 열리는 BWA총회는 올해 중남미 차례로 쿠바는 개신교인중 침례교인이 가장 많다는 이유로 개최지가 됐다.

다음은 김목사가 총회장 취임 직후인 8일 카스트로와 만나 2시간여 동안 나눈 얘기와 그에게서 받은 인상, 카스트로의 종교관 등을 송평인 기자가 듣고 정리한 것이다.》

올 1월 호주 멜버른에서 세계 침례교 총회장으로 선출된 한국의 김장환목사(66·수원중앙침례교회 담임목사 겸 극동방송사장)가 최근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세계침례교연맹(BWA)총회에서 총회장에 취임했다.

김목사는 총회기간 세계적 종교교단의 지도자로서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처음으로 피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의장을 만났다.

다음은 김목사가 총회장 취임 직후인 8일 카스트로와 만나 2시간여 동안 나눈 얘기와 그에게서 받은 인상 및 카스트로의 종교관 등에 대해 본지에 특별기고한 것이다.

쿠바 아바나에 도착했을 때 이곳은 축제분위기에 들떠 있었다.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표류했던 여섯 살짜리 소년 엘리안 곤살레스가 귀국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았다. 쿠바인들은 외교전쟁에서 미국을 이겼다는 승리감에 도취해 있는 것 같았다. 카스트로는 당초 5일 세계침례교연맹 총회 만찬 리셉션에 나와 연설키로 계획이 잡혀 있었는데 이날 엘리안의 아버지에게 직접 쿠바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는 행사에 참석하느라 계획이 취소됐다. 결국 ‘카스트로를 못 만나는 구나’ 생각하고 그에게 선물로 주려고 준비했던 금박 스페인어 성경책을 다음날 쿠바 종교차관에게 건네줬다.

아바나 시내 실내체육관에서 마지막 집회를 갖기로 한 8일 오후 5시 10분경. 카스트로측에서 갑자기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집회가 시작되기 약 3시간 전이었다. 카스트로는 공산당 중앙당사에서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카키색 군복을 입고 우리를 맞았다. 올해 74세가 되는 그의 턱수염은 희끗희끗해져 있었으며 얼굴에는 검버섯이 피어 있었다. 친근한 할아버지 같은 인상이었다.

처음에는 영접실에서 앉지도 않고 서서 얘기하는 바람에 금방 끝내려는 줄 알았는데 10분쯤 지나자 “집무실로 자리를 옮기자”고 했다. 그는 2시간을 만나고도 부족했던지 20분 더 얘기를 했다. 내가 만나본 국가수반 중에서 전두환 대통령보다 말을 더 잘하고 많이 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내 눈동자만 보고 얘기하는 것이 호감을 갖고 있는 듯했다. 카스트로는 어렸을 때 영세를 받은 얘기를 했다. “영세를 안 받으면 유대인 취급을 받았는데 천한 대우를 받기 싫어 여섯 살 때 영세를 받았으며 영세를 받기 위해서는 2페소를 내야하는데 운좋게 공짜로 받았다”고 말했다. 선물로 준비한 성경책을 되돌려받아 정식으로 건네주자 “어릴 때는 성경을 많이 읽었다”며 좋아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북한에도 2번이나 가고 전세계에 안 가본 곳이 없는데 쿠바만 못 가봤다고 하자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정말 말을 잘 하느냐”고 물었다. 우리나라에서도 100만명이상 모이는 대중집회를 몇차례 갖고 내가 통역을 했는데 정말 멋진 분이고 당신처럼 말을 잘한다고 하자 “초청을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이날 저녁 집회에서 대독할 인사말을 검토해 달라며 미리 영어로 써온 인사말을 내밀자 그는 스페인어로 일일이 내용을 새로 써서 건네줬다. 나중에 집회장에서 그걸 읽었을때 박수소리로 강당이 떠나갈 듯 했다. 카스트로가 개신교에 이렇게 큰 관심을 가진 줄 몰랐다고 했다.

그는 또 “집회가 국영 TV에 보도되느냐”고 참모진에게 묻고 “왜 보도하지 않느냐”며 취재를 지시했다. 결국 집회에는 국영 TV 카메라 6대가 나왔고 종교장차관이 모두 참석했다. 다음날 국영 TV는 한시간 가량에 걸쳐 집회내용을 보도했다. ‘과연 공산주의의 대통령이 세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쿠바에 필요한 것이 뭐냐고 묻자 그는 “미국이 빨리 경제제재를 풀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침례교 총회가 식량과 의약품에 대한 제재를 해제해달라고 미국정부에 촉구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데 대해서는 고마움을 표시했다. 미국에서는 클린턴 대통령, 고어 부통령 등을 비롯해 상하원의장, 상원 외교위원장 법사위원장 등이 모두 침례교인이다. 카스트로가 교황보다 더 긴 시간을 할애해 침례교 총회장인 나를 만나준 것은 경제제재의 고삐를 쥐고 있는 미국에서 가톨릭보다 침례교가 더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늘 배구시합에서 쿠바에 져 속상하다고 하자 “한국에는 져도 좋은데 러시아에는 질 수 없다”며 옛 소련에 대한 강한 경쟁의식을 내보였다. 한국을 꼭 방문해 줄 것을 권유하자 “북한에 가봤는데 한국에도 꼭 가고싶다”고 말했다.

환담을 끝내고 집무실을 나와 경호원이 엘리베이터를 세워놓고 기다리는 곳에 이르자 “화장실에 가서 볼 일을 보고 가라”고 했다. 국가수반을 기다리게 하는 것이 결례인 것 같아 그냥 가겠다고 하니까 “곧장 집회에 참석하러 가는데 어떻게 참느냐”며 3번이나 권유했다. ‘아 저런 카리스마가 있어서 40년을 통치할 수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의 거듭된 후의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바로 집회장소로 향했다. 카스트로와의 만남은 내게 침례교 총회장으로서 첫 시험대를 통과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총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은 아시아 출신의 첫 총회장이 과연 침례교를 대표할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는데 이 일로 남아있던 의구심을 모두 떨쳐버린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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