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교회 담임목사직 세습…사회문제로 비화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27분


우리나라 굴지의 대형교회에서 일어난 담임목사직 세습이 교계의 쟁점이 되고 있는 가운데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본격적인 세습반대 운동에 나서기로 해 범교단과 사회의 문제로 비화하고 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공동대표·손봉호서울대교수, 홍정길남서울교회목사, 강영안서강대교수)은 29일 성명서를 내고 “담임목사직 세습은 언약공동체로서의 교회의 근본을 뒤흔드는 위험하고도 불행한 사태”라고 비판했다.

이 성명은 이어 “재벌총수마저도 경영권을 포기하는 오늘날, 혈연관계에 의지해 교회의 평안을 추구하려는 것은 교회가 깊이 병들어 있다는 증거”라면서 “담임목사직 세습은 한국교회에 만연되어온 물량주의와 특정목사에 의한 강단권 독점이라는 잘못된 관행이 낳은 결과로서 마땅히 철회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은 다음달 1일부터 네티즌들을 상대로 담임목사직 세습반대 서명운동을 벌이고 9월에는 이와 관련한 공개포럼도 개최키로 했다.

공동대표 중 한사람인 강영안교수는 “장로교의 대표적 교회인 충현교회에 이어 올들어 감리교의 대표적 교회인 광림교회에서도 교회세습이 확정됐으며 소망교회에서도 분당 소망교회에 아들을 담임목사로 보내려는 움직임이 있다”면서 “한국교회의 담임목사직 세습이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단계에 왔다”고 말했다.

강교수는 이어 “세습현상이 주로 돈 많은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며 “이들 교회의 목사들은 이사회의 재벌총수처럼 당회에서 전권을 휘둘러왔기 때문에 후임자 선발절차의 공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교회 세습문제는 4월말 등록신자수 8만5000명으로 세계 최대의 감리교회인 서울 강남구 신사동 광림교회가 내년 3월 은퇴를 앞두고 있는 김선도담임목사의 후계자로 부목사인 아들을 선임하면서 다시 불거지기 시작했다.

후계자 확정사실이 교인들에게 알려지자 이 교회의 인터넷 홈페이지 게시판인 ‘광림나눔터’에는 교회 세습에 반대하는 글이 폭주했다. 교회측이 이에 즉각 삭제로 대응하자 비판의 글이 기독교대한감리회 본부 홈페이지 등으로 확산됐다. 감리교단의 기관지도 교회세습을 강력히 비판하는 사설을 싣었다.

광림교회 김모장로는 “감리교는 장로와 평신도 대표들로 이뤄진 구역인사위원회에서 후임자를 결정하도록 돼 있다”며 “지난 4월 구역(개별)교회인 광림교회를 감독하는 서울 남부연회 강남지방 감리사 주재로 구역인사위위원회를 열어 적법하게 후계문제를 확정했다”고 밝혔다.

김장로는 “교회에 워낙 신도가 많다보니 일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회법이 정한 절차를 모두 거친 것이므로 왈가왈부할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올초에는 서울 강남구 역삼동 충현교회의 담임목사가 한밤중 자택에서 괴한들에게 집단폭행을 당했는데 경찰조사결과 97년 있었던 교회세습에 반대한 일부 장로들이 개입한 것으로 밝혀지기도 했다. 교회세습으로 인한 분열의 후유증이 얼마나 클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다.

이밖에 구로중앙교회 인천주안교회 대구서문교회 등 교인수가 수만명에 이르는 대형교회가 이미 ‘세습’을 완료했거나 완료 직전 단계에 있다.

해당 교회에서는 세계적인 부흥사 빌리 그래함 목사도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등 미국에서도 선례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고 있지만 빌리 그래함의 경우에는 목회자 자리가 아니라 빌리 그래함 센터의 운영권을 넘긴 것이므로 다르게 봐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얼마전 작고한 고 한경직목사의 경우 이같은 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목사인 아들을 일찌감치 미국으로 보냈을 정도로 자기관리에 엄격했다.

<송평인기자>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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