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불사의 추구'

  • 입력 2000년 6월 23일 19시 59분


▼'불사의 추구' 앙리 마스페로 지음/동방미디어 펴냄▼

도교란 무엇인가? 그것은 달의 뒷면처럼 감춰져 있던 동아시아의 무의식이며 감성이다. 상상력에 대한 폄하와 억압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어느 시대에나 존재했음을 생각할 때 과거 도교의 문화적 지위가 그다지 높지 못했으리라는 점은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도교는 지배계층에 의해 줄곧 이단시돼 왔고 근대 이후 학문 대상으로서도 가장 늦게 주목을 받았다.

도교의 본산인 동아시아에서조차 학문적 탐구를 꺼려하고 있을 때 선각적으로 도교의 내재가치에 눈을 뜬 곳은 뜻밖에도 프랑스였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 시대의 동양탐구열로부터 착근된 프랑스 중국학은 20세기초 마침내 근대 도교학의 개조(開祖)인 앙리 마스페로(Henri Maspero·1883∼1945)를 낳게 된다. 당시 프랑스 중국학은 대가인 샤반(E. Charvannes)의 뒤를 이어 마스페로, 펠리오(P. Pelliot), 그라네(M. Granet) 등의 세 천재에 의해 활짝 개화하고 있었다.

펠리오가 언어학을 바탕으로, 그라네가 사회학적 관점에서 중국에 접근했다면 마스페로는 역사학적 견지에서 고대 중국문화를 이해하고자 했다. 그러나 그는 방법적으로는 비교언어학 비교종교학 등을 다양하게 원용해 고대 중국의 언어 민속 종교 신화 등을 탐구했다. ‘고대중국’ ‘서경(書經)중의 신화전설’ ‘중국어음운학’ 등 다방면에 걸친 그의 저작들은 하나 하나가 괄목할 만한 업적이지만 오늘날 그에게 타의 추종을 불허할 지위를 부여한 분야는 역시 도교다.

마스페로의 도교 논고는 그의 사후에 편집, 간행된 ‘도교와 중국의 종교’(1971)에 대부분 수록됐다. 이 책의 상당부분은 작년 초 ‘도교’라는 서명으로 이미 국내에 번역 출간됐고 잔여 부분인 ‘고대 도교의 양생술’을 번역한 것이 지금 소개하는 ‘불사의 추구’다. 원래 한 책에 속했던 ‘도교’의 내용은 사실 도교에만 국한돼 있지 않다. 오히려 중국의 여러 종교 신화 민간신앙 소수민족문화에 대한 소개 및 조사보고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도교에 대해서는 주로 육조(六朝) 시대를 중심으로 수련법과 종교의식, 대중들의 종교생활, 교단조직, 기원 및 역사 등을 논했다.

도교의 근본 목표는 현세에서 육신의 불멸을 달성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신체 수련인 양형(養形)과 정신수련인 양신(養神)이 필요하게 된다. 이 책에서는 우선 중국의 해부학과 생리학에 대해 소개를 한 다음 이를 바탕으로 태식과 폐기 등의 호흡법, 성적 기교인 방중술(房中術), 체조인 도인법(導引法) 등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논평을 곁들이고 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방대한 ‘도장(道藏)’의 원전자료를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는 그의 어학 및 문헌학적 지식과 시종 비교학적 객관적 자세를 견지하면서 타문화를 공평하게 보고자 하는 그의 학문적 태도다. 전반적으로 볼 때 그의 도교 이해는 외단(外丹)보다 내단(內丹) 방면에 치중되어 있으며 특히 상청파(上淸派) 계통의 정신수련법인 수일(守一), 존사(存思) 등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이 인지된다. 그러나 시대를 뛰어넘는 그의 학문도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의학과 도교와의 관계를 선후관계 혹은 독립적으로 본 것이라든가 노장(老莊)과 신선가(神仙家)를 기원적으로 동일시하는 듯한 인상 등은 그의 중국문화에 대한 ‘동정적 오해’의 사례라 할 것이다.

마스페로의 도교연구는 칼텐마크(M Kaltenmark) 쉬뻬(K Schipper) 등 후학에게 계승돼 프랑스 도교학을 성립시키고 미국에까지 이를 전파시켰다. 오늘날 후기구조주의 생태학 여성학 신과학 방면의 저명한 서구 학자들 치고 도교를 운위하지 않는 이가 거의 없음을 볼 때 마스페로의 도교 연구가 서구 지성사에 미친 또 다른 영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도교 전통이 풍부하고 마스페로보다도 이른 시기에 ‘조선도교사’를 쓴 이능화(李能和·1868∼1945)와 같은 걸출한 도교학자를 배출한 나라였다. 그러나 해방 후 고루한 학풍은 도교 연구를 이단시했고 이런 경향은 아직도 불식되지 않고 있다. 이 개탄스런 현실에서 한 서구학자의 ‘동양’연구서의 때늦은 출간을 바라보는 심정은 착잡하기 이를 데 없다. 표정훈 옮김 231쪽, 7500원.

정재서<이화여대 중문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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