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화제]문단에 불거진 '권력론' 꼬리잇는 논쟁

  • 입력 2000년 5월 30일 20시 30분


진짜 ‘문학 권력자’는 누구인가. 권력을 비난받는 자인가, 권력을 비판하는 자인가.

문단에서 권력론이 다시 일고 있다. 논쟁의 발단은 문학평론가 권오룡씨가 최근 ‘문학과 사회’ 여름호 쟁점란에 ‘권력형 글쓰기’란 글을 실으면서 비롯됐다. 여기서 권씨는 ‘자기가 매우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진짜로 빨리 달리는 것으로 착각한 말’의 우화를 비유로 들면서 일단의 평론가를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누구인지 명시하지 않았지만 이들은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권력을 상정한 뒤 이를 공격하는 글쓰기를 ‘의로운 싸움’으로 착각하지만, 그것은 ‘권력을 깨뜨린다는 명분’으로 ‘권력의 음지에 기생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빨리 달리던 말은 숨이 차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말로 권력을 비판을 통해 스스로 권력화하려는 의도가 좌절할 것임을 암시했다.

이 글이 나온 뒤 문단 권력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취해온 문학평론가 권성우씨가 발끈하고 나서면서 논쟁이 본격화됐다. 문학과지성사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이 글이 ‘시종 익명을 취하고 있지만 누가 보아도 자신과 강준만 김정란 이명원 등 비평가에 대한 비판’이라며 지면을 통한 반론 기회를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대해 문학과지성사는 ‘문학과 사회의 입장’이란 글을 통해 “특정 인물을 구체적인 대상으로 취하고 있다는 주장은 심정적인 추측일 뿐이며 어떤 실체적 근거도 없다”고 일축했다. 다시 권성우씨는 장문의 글을 띄워 “권오룡씨 글처럼 비판대상을 밝히지 않는 모호한 비판은 생산적 대화를 가로막는 논법”이며 “이런 식의 뒤통수 때리기는 오히려 오만한 권력형 글쓰기의 전형”이라고 맞받았다.

그 뒤로 다른 논객들이 가세하면서 확대된 논쟁은 감정적인 양상으로 변해갔다. 문학평론가 이명원씨도 “권씨는 비평가로서보다 우화작가로서 더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닌가” 묻고 “권력을 종이호랑이라고 치부하고 있는 사고의 단순함”을 꼬집었다.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문학평론가의 수준과 비판의 익명성을 시니컬하게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 이때부터 사이버 논쟁은 입씨름으로, 저잣거리의 욕지기 수준으로 떨어져 험담과 고성이 오갔다.

이같은 ‘게시판 논쟁’에 대해 문학계가 보이는 반응은 상당히 냉소적이다. ‘생산적 비판 부재를 비난하는 말만 무성하다’ ‘각설이끼리 서로 쪽박 깨는 이야기일 뿐이다’ ‘비판이 과감해졌지만 수준은 떨어지고 노골성만 커졌다’ 등등.

문학평론가 도정일 교수는 “문학의 위기 극복이란 시급한 문제를 놔두고 누가 힘이 센지 권력을 다툴 정도로 평론계가 한가하지 않다”면서 “시야를 바깥으로 돌려 독자에게 흥미를 끌 비평의 이슈를 잡아내 사회화는 작업에 눈 돌려야할 때”라고 지적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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