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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0년 3월 24일 19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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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지난 한 해 동안에만 해도 ‘반경제학(反經濟學)’, ‘세이프티 넷(Safety Net)의 정치경제학’, ‘반(反)글로벌리즘’, ‘시장(市場)’ 등 4권의 저서를 통해 세인의 주목을 끌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그는 ‘글로벌리즘’에 대해서는 명백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단지 ‘글로벌리제이션’에 대항하기 위해 안이하게 ‘내셔널리즘’의 입장에 서는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글로벌리제이션 대 내셔널리즘’이라는 낡고 단순한 대립이야말로 우리가 깨부수지 않으면 안될 과제라고 역설한다.
그는 시장원리를 예찬하는 대다수의 경제학자들에게 이의를 제기하면서 시장원리를 사회의 구석구석까지 침투시키면 오히려 사회혼란과 침체를 불러 일으킨다고 말한다. 노동 토지 자본과 같은 ‘본원적 생산요소’는 시장 그 자체가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이기에 완전히 시장화할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역에서까지 시장원리를 관철시킨다면, ‘신뢰’와 ‘공동성(共同性)’이 붕괴되어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시장원리는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책임과 자기결정에 토대를 두고 행동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한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발생했을 경우 시장은 아무런 보상도 해 주지 않는다. 예를 들어 금융 시스템을 전혀 모르는 혼자 사는 노인이, 전 재산을 어느 은행에 맡겼는데, 만약 그 은행이 도산했다고 하자. 시장은 이 노인에게 한푼도 보상해 주지 않는다. 가네코는 이같은 사회가 과연 건전하다고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사람들이 조마조마해하지 않으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세이프티 넷’이 필요하다고 가네코는 말한다. 세이프티 넷이란, 서커스단이 줄타기 곡예를 할 때 만일의 경우를 위해 줄 밑에 쳐 놓는 ‘안전망’이다. 세이프티 넷이 있음으로 해서 곡예사가 마음껏 곡예를 펼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회에도 안전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한 개인이 짊어질 수 없는 리스크가 발생했을 때 그것을 보호해 줄 ‘세이프티 넷’이 사회 안에도 존재할 때에 비로소 약한 입장에 있는 개인도 마음놓고 행동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가네코가 제시하고 있는 ‘세이프티 넷’은 중앙 정부의 정책을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중점은 역시 지역 주민, 노동자, 농민, 중소기업의 차원에서 ‘인간의 얼굴이 보이는’ 사회적 교환의 구조에 둔다. 나아가 이것은 ‘국민국가의 안락사’로까지 이어진다고 가네코는 보고 있다. 자본주의와 시장원리의 한계를 주시하면서, 정의와 공공성(公共性)이 실현될 수 있는 사회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저자는 진지하게 고찰하고 있다.
이연숙(히토쓰바시대학 교수·사회언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