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독서]'적멸의 즐거움'/죽음이 기쁨이 된 선사들

  • 입력 2000년 3월 10일 19시 21분


▼'적멸의 즐거움' 정휴 지음/우리출판사 펴냄▼

속인들은 죽으면서 유서를 남긴다. 그 대부분은 자신이 평생 벌어들인 재산을 분배하는 내용일 때가 많다. 속인에게 죽음이란 소유의 끝이거나 사랑하는 이들과의 작별을 의미한다.

선사들은 세상을 떠나면서 임종게(臨終偈)를 남긴다. 자신이 절절한 삶의 체험이나 치열한 구도 끝에 깨우친 진리의 세계를 짧은 시 한 수로 정리하는 것이다.

조계종의 문사(文士)인 정휴 (正休)스님이 치열한 구도정신으로 깨달음을 얻은 역대 고승들의 입적(入寂)과정과 임종게를 한 권의 책으로 묶어냈다. 어쩔 수 없이 종단정치에 일정부분 관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을 참회하며 지난 여름부터 설악산 자락에 은거해 쓴 글들이다. 이 글을 쓰면서 절입구에 있는 부도(浮屠·스님의 사리를 모신 돌탑) 곁에서 오랫동안 앉아 있다가 오는 시간이 많아졌다는 고백에는 가슴이 저려온다.

책에 소개된 역대 선사들은 대부분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었고 마치 여행을 떠나듯 홀연히 열반(涅槃)과 적멸(寂滅)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대부분은 앉아서 입적했고 서서 열반을 한 경우도 있었다. 물구나무를 서서 거꾸로 입적한 선사가 있었는가 하면 뜰 앞을 거닐다가 “오늘 가야겠다”고 독백을 하며 몇발을 내딛은 뒤 입적한 분도 있다. 스승에게 관을 선물 받고는 덩실덩실 춤을 춘 선사, 스스로 장작더미 위에 올라가 소신공양(燒身供養)한 선사, 황제의 부름에 응하지 않고 서둘러 입적한 선사….

근 현대사 한국 고승들의 입적과정과 임종게도 소개돼 있다. “야반(夜半) 삼경(三更)에 문빗장을 잠그라”고 한 경봉스님, “일생동안 남녀 무리들을 속여서 그 죄업이 하늘을 넘친다”고 읊었던 성철스님, 구산스님이 입적한 뒤 그의 사제가 다비식에서 “스님 스님, 얼마나 좋으시냐”고 외쳐 주위를 깜짝 놀라게 한 사연, 평소 “죽어서는 미국에서 태어나 더욱 많은 이들을 구제하고 싶다”던 일타 스님이 최근 하와이에서 입적했으나 한국에서 다비장이 거행됐던 이유 등이 드라마틱하게 그려져 있다.

임종게는 선사들이 자신의 죽음을 예측하면서 생시에 작성해 두는 경우가 대부분. 깨친 순간의 감동을 담은 오도송(悟道頌)과 함께 선사들의 정신적 깊이를 드러내 주는 ‘확고한 물증’이다. 정휴스님은 정작 어떤 임종게를 준비해 두었을까. 239쪽 7000원

<오명철기자>osc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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