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한국전통문화학교 김병모총장"민족문화자존심 가르칠터"

  • 입력 2000년 3월 7일 20시 06분


국내 최초의 문화재 전문 4년제 국립대학인 한국전통문화학교가 최근 충남 부여군 규암면 백제역사재현단지에 문을 열었다. 전통 문화 보존과 계승의 첨병이 될 문화재 전문 인력을 키워내기 위해 문화재청이 세운 학교. 문화재관리학과 전통조경학과에 20명씩의 첫 신입생을 뽑았다. 2002년까지 전통건축학과 전통미술공예학과 문화유적학과 보존과학과가 개설된다.

4년간 전통문화학교를 이끌어 갈 김병모(60·고고학) 초대 총장. 한양대교수에서 이곳으로 자리를 옮긴 김총장을 만났다. 교문을 들어서자 교정에 늘어선 50개의 장승과 솟대가 찾는 이를 반겨준다. 중요무형문화재 목조각장인 박찬수 목아박물관장이 제작해 기증한 것들.

―한양대에서 탄탄한 입지를 갖고 계셨고 고고학계의 스타 중 한 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지방의 신설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 뜻밖입니다. 연봉이 절반으로 줄었다는 말도 들리는데….

“연봉이 좀 준 것은 사실이지만, 절반까지는 아닙니다. 지난해 말, 한양대에서 옮기겠다고 하자 총장께서 그러시더군요. ‘농담이겠죠. 어느 대학으로 가신다는 말씀입니까.’ 제가 웃으면서 그랬죠. ‘교수가 아니라 총장입니다.’ 그랬더니 총장께서 ‘그럼 가십시요’, 그러시더군요. (웃음) ”

―초대 총장으로서의 각오는….

“우선 자존심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쇼팽이나 퀴리부인을 우리는 프랑스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폴란드 사람입니다. 폴란드는 훌륭한 전통과 인적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자존심은 없었습니다. 특히 엘리트층이 그랬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폴란드와 비슷하단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일본 영국 이탈리아 같은 나라가 왜 잘 삽니까. 모두 민족 문화에 대한 자존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어떤 배짱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을 가르치고 배워야 합니다. 전통문화학교가 그런 곳입니다. 민족 자존심을 회복하는 곳입니다. ”

―어떻게 전통문화의 자존심을 지키고 그것을 또 어떻게 미래의 문화로 연결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가 창의적이고 문화가 뛰어난 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해선 어느 다른 민족도 이의를 달지 않을 겁니다. 한 예를 봅시다. 경희대 한의학과는 중국 베이징대와 맞먹는 세계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전세계로 퍼져 있는 태권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태권도 도복은 고구려의 기마복장입니다. 이런 것들을 잘 들여다보면 어떤 단초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선 학생들의 창의력과 상상력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먼저 돈 걱정 하지 않고 공부하도록 할 겁니다. 너무 돈 걱정을 하면 창의력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루 한두 시간은 몽유병에 걸린 듯 공상도 하고 놀면서 지내라고 할 겁니다. 그래야 상상력도 나오고 창의력도 나오는 겁니다. 전국의 유적지와 문화재 현장을 다니고 외국에 나가 그들의 문화도 보면서 서로 비교해보면 우리의 경쟁력있는 문화가 무언지 찾아낼 수 있을 겁니다. ”

―개설돼 있거나 앞으로 개설될 학과를 보면 너무 유형문화재에만 국한된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당연히 무형문화재도 가르쳐야 합니다. 가능한 한 빨리 관련 학과를 더 만들어야죠. 예를 들어 음식문화 놀이문화 같은 것도 중요합니다. 신라의 화랑도는 고급스런 놀이입니다. 놀이도 학교에서 배우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것을 잘 개발해 외국으로 수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래도 실기교육에 큰 비중을 두게 될 텐데요….

“우리 학교의 교수진 뿐만 아니라 중요무형문화재 기능 예능 보유자(일명 인간문화재)와 같은 외부 전문가를 초청해 실기 교육을 할 겁니다. 물론 밖에 나가서도 배우죠. 유적과 현장 답사는 물론이고 절에 가서 잠도 자게 하고 승복도 입어 보게 할 겁니다. 종묘에 가서 제기(祭器) 닦는 것도 배우게 할 겁니다. 그렇게 익숙해져야 애정과 자존심이 생기는 거니까요. ”

김총장은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1회 졸업생으로 1978년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고고학으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재직해 오면서 유네스코 세계박물관협회 이사, 한국고고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고학자에게 발굴은 생명과도 같다. 그러나 그는 앞으로 4년 동안 발굴과 연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지금은 한국전통문화학교가 더 중요합니다. 임기를 마치면 다시 발굴현장으로 돌아갈 겁니다.”

<부여〓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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