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너 비커스 평전에 나오는 일화들]불같은 성격 못말려

  • 입력 2000년 1월 12일 19시 02분


미국의 소프라노 캐럴 바네스는 오페라 ‘팔리아치’의 여주인공 네다 역을 맡아 리허설을 하던 중 생긴 일.

카니오 역을 맡은 캐나다 테너 존 비커스가 부정(不貞)을 저지른 네다 역의 바네스를 무섭게 몰아치다 갑자기 휙 밀쳐버렸다. 바네스는 5m나 멀찌감치 나가떨어졌고, 마을사람 역을 맡은 합창단 남자들이 황급히 달려들어서 둘을 떼놓아야 했다. 극중의 카니오처럼 비커스 역시 실제와 극을 혼동했던 것이다.

▼극과 실제 혼동 다반사▼

독일 출신의 세계적 메조 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는 지금도 몸에 칼자국을 갖고 있다. ‘카르멘’에 함께 출연한 비커스가 리허설 중 칼로 ‘카르멘’을 그어버렸기 때문.

최근 미국에서 출간된 비커스 평전 ‘영웅의 생애’에 나오는 일화들이다. 최근 캐나다의 ‘내셔널 포스트’ 지는 자국 출신의 전설적 테너 비커스에 대한 평전을 특집기사로 다루었다.

올해 74세의 비커스는 54년부터 85년까지 미국 캐나다를 비롯해 전세계를 무대로 활동한 ‘드라마티코’(劇的) 테너. 60년대 마리오 델 모나코, 프랑코 코렐리와 함께 드라마티코의 ‘3대 영웅’으로 활동했던 그는 물불 안가리는 열혈적 성격과 황소고집으로 유명했다.

이번 평전은 당연히 비커스의 동의를 얻지 못한 채 출판됐다. 저자인 제니 윌리엄즈는 비커스의 방해 때문에 집필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비커스의 왕년 동료들은 ‘협박’을 못이겨 얘기를 꺼내기를 망설였고, 가까운 친척들도 아예 입을 다물었다.

비커스의 ‘협박’은 현역시절에도 유명했다. 지휘자 주빈 메타도 젊었을 때 오페라 리허설 도중 비커스로부터 “이 X자식! 너 악보도 제대로 읽지 않았지”라는 호통을 들었다.

비커스는 정치 사회적 ‘보수파’ 로도 유명했다. 동성애를 주제로 한 브리튼의 오페라 ‘베니스에서 죽다’를 연습하던 그는 갑자기 악보를 내팽기치며 소리질렀다. “어떤 녀석이던, 다음에 이따위 작품에 출연하라고 했다간 죽여버릴 테다.”

▼야수성 불구 팬들 사랑 ▼

그런 ‘야수성’이 일찌감치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성악팬들은 늘 그를 사랑했다. 그가 무대 뒤편으로 깊게 울려퍼지는 강건한 음색으로 강건하고 사나운 테너 배역에서 아무도 대신할 수 없는 특이한 개성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리오 델 모나코의 ‘트럼펫처럼’ 따갑게 울리는 음색과 강렬히 대비된다.

성악팬과 음악평론가들은 ‘비커스와 같은 특이한 개성의 가수는 한 세기에 한명 찾아보기도 힘들 것’이라고 말한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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