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대 2000학년 대입논술 문제-해설]

  • 입력 2000년 1월 7일 19시 53분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의 논술고사는 철학자의 논쟁, 소설 등 문학작품, 인문·사회과학분야 동서고금의 고전에서 출제됐다. 고려대는 ‘제도와 인간’, 연세대는 ‘인간관계’, 이화여대는 ‘돈의 이동과 개인의 삶의 질’에 대해 출제해 모두 ‘인간’이 공통된 화두였다. 중앙교육진흥연구소의 분석을 토대로 출제경향과 논술의 올바른 작성법에 대해 알아본다.】

<답안작성시 유의사항>

1.띄어쓰기를 포함하여 1500자 내외(1400∼1600자)로 서술할 것.

2.시험시간은 150분.

3.제목은 쓰지 말고 본문부터 시작할 것

4.수험번호, 성명 등 자신의 신상에 관련된 사항을 답안지에 드러내지 말 것.

5.반드시 흑색 연필이나 흑색 볼펜으로 작성할 것.

논제(인문-자연 공통)

오늘날 돈은 단순한 교환 수단이나 재화 축적 수단 이상의 복합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아래의 제시문들을 논의의 근거로 삼아 현대사회에서 돈이 지니는 의미를 개인이 추구해야 할 삶의 질과 관련시켜 논술하시오.

(가) 바다에 나갈 때 나는 한낱 선원으로서 나간다. 그래서 돛대 앞이나 갑판 아래, 또는 제일 높은 마스트의 꼭대기에서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 물론 무슨 일이든지 명령을 받아야 하는 신세이니, 5월의 초원에 뛰노는 메뚜기처럼 이 마스트에서 저 마스트로 바삐 뛰어다녀야만 한다. 이것은 확실히 괴로운 일이다. 특히 지방 명문가에서 태어난 사람이라면 더욱 자존심이 상할 것이다. 배를 타는 일로 생계를 유지하기 직전까지 어느 시골 학교에서 교사로 으쓱대며 아무리 몸집 큰 학생이라도 두려워 쩔쩔매도록 한 경험이 있다면 교사에서 선원으로의 변신은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으리라. 세네카나 스토아학파 식의 높은 수양을 쌓지 않고선 적당히 코웃음을 치며 참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나는 경고하련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런 마음도 차츰 사그라지다.

시골뜨기 늙은 선장이 내게 비를 들고 갑판을 청소하라는 명령을 내린들 어쩌겠는가? 신약성서에 비추어 보면 이 정도의 굴욕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노예 아닌 사람이 이 세상에 존재하느냐고 나는 묻고 싶다. 늙은 선장이 아무리 나를 혹사하고 괴롭힌다고 해도, 나는 다른 사람들도 나름대로 육체적 또는 정신적인 의미에서는 노예라고 자위하면서 스스로 만족해 한다. 결국 온 세상이 서로에게 주먹질을 하고 있으니 각자는 서로 어깨를 다독거리며 만족하는 수밖에 없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언제나 일반 선원의 자격으로 바다에 나간다. 선원 일은 나의 노고에 대해 대가를 지불해 주기 때문이다. 동전 한 푼이라도 승객에게 돈을 지불한 예는 없다. 반대로 지불하는 쪽은 오히려 승객이다. 돈을 지불한다는 것과 돈을 받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얼마나 큰 차이인가? 돈을 받는다는 것, 이를 무엇에 비할 수 있겠는가? 돈은 지상의 온갖 악의 근원이므로 돈을 가진 사람은 절대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우리의 뿌리 깊은 믿음을 생각하면 사람이 돈을 받기 위해 행하는 갸륵한 수고야말로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아아, 얼마나 즐겁게 우리는 그 파멸에 몸을 맡기고 있단 말인가? (허먼 멜빌, ‘모비 딕’) (나) 가난은 일정한 화폐경제 단계에서만 지극히 순수하고 특수한 형태로 나타난다. 아직 화폐경제에 의해 매개되지 않은 자연적인 조건 하에서 그리고 농업생산물이 상품으로 등장하지 않는 경우에는 개인의 절대적인 궁핍이라고 하는 것은 매우 드물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러시아는 화폐경제의 영향이 미약한 지역에서는 개인적인 궁핍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자랑스럽게 말하였다. 가난은 하나의 일반적인 현상으로서, 사람들은 화폐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최소한의 필수품을 쉽게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가난이 도덕적인 이상으로 나타나게 되면 그에 상응하여 화폐의 취득은 가장 위험한 유혹, 진정한 악(惡)으로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 영혼의 구원이 최종 목표로 간주될 때 많은 교리에서는 가난이 긍정적이며 필수적인 수단으로 해석되고 왕왕 수단으로서의 지위를 넘어 그 자체가 중요하고 타당한 가치로서의 권위를 가지게 된다. 가난을 절대적인 가치로까지 고양시켰던 그러한 내적인 마음자세는 초기 프란시스코파 수도사들에게서 가장 열렬하고 명확하게 나타난다. 그들에게 가난은 독립적인 가치 혹은 심원한 내적 요구의 상관 개념이었다. 이 교단의 초기에 정통한 한 역사가는 이렇게 쓰고 있다. “프란시스코파 수도사들은 가난 가운데서 안전과 사랑, 자유를 발견하였다. 이 새로운 사도들이 필사의 노력을 다해 이 귀중한 보배를 보전하려고 했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가난에 대한 그들의 숭배심은 거의 무한한 것이었다. 그들은 불타는 열정으로 그들의 애인에게 날마다 새로이 구혼했던 것이다.” 이와 같이 가난은 적극적인 소유물이 되었다. 가난은 영혼의 구원이라는 신성한 재화의 획득을 매개했고 다른 한편으로 경멸적이고 세속적인 재화를 얻기 위해 돈이 수행하는 것과 똑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돈과 마찬가지로 가난은 실제적인 일련의 가치가 흘러들어가고 다시 풍성하게 되어 흘러나오는 저수지였다. 가난은 지고한 의미에서 ‘세계는 모든 것을 포기하는 사람에게 속한다’는 사실의 표현인 것이다. 돈을 포기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난 속에서-마치 탐욕스러운 사람에게 돈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모든 사물 중에 가장 순수하고 정묘한 것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프란시스코파 수도사들은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이라고 불린다. (게오르그 짐멜, ‘돈의 철학’)

(다) 부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해 부(富)가 가져오는 불행에 대하여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꾸며낸다. 미다스는 자신의 딸을 황금으로 변하게 했고, 모든 것이 손대는 족족 황금으로 바뀌는 바람에 음식조차 먹지 못했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부자가 불행하지 않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알고 있고 그것은 최근의 사회과학적 조사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부유해질수록 그만큼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부는 많은 소비재를 구매할 능력을 부여하지만, 오히려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에게 하고자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준다는 점이다. 부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고용하거나 해고하고, 승진시키거나 좌천시킬 수 있으며, 사업을 시작하거나 그만둘 수도 있고, 사업체를 이 곳에서 저 곳으로 옮길 수도 있다. 부유한 사람은 주위의 물적·인적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 반면에 부유하지 못한 사람은 주위의 환경에 순응해야 한다.

부유한 사람은 정치적 영향력 역시 아무도 모르게 돈으로 살 수 있다. 선거 기부금을 통해 한 표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정치 권력을 손에 넣을 수도 있다. 미국 상원의원의 반수 이상이 인구의 상위 1% 이내의 부유층이며, 저명한 상원의원과 주지사들 다수가 엄청난 부의 소유자들이다. 선거 자금의 필요성으로 말미암아 부를 소유하지 못한 정치가가 부패할 수밖에 없는 시대에는 부자가 유일하게 정직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신의 선거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영혼을 팔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개인의 사회적 서열을 매기는 중요한 척도 중 하나였던 부는 시간이 흐르면서 개인의 가치를 재는 거의 유일한 척도가 되었다. 부는 자신의 패기를 입증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달려들 만한 유일한 게임이다. 부는 치열한 경합장이다. 그 곳에서 시합을 하지 못하는 사람은 2류로 규정된다. (레스터 C. 서로, ‘부의 구축(構築)’)

◆해설

평이하면서도 학생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았음직한 현실적인 주제여서 수험생이 문제를 파악하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가)는 돈의 개인적 의미, (나)는 종교적 의미, (다)는 정치 사회적 의미를 다루고 있다.

수험생은 무엇보다 ‘돈의 가치’와 ‘삶의 질’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이러한 가치관과 부합 되는 제시문의 내용을 논의의 근거로 삼아야 한다.

주장이 ‘돈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다’는 식의 상투적 추상적인 수준에 그쳐서는 곤란하다. ‘돈’과 ‘현대 사회’에 대해 각각 살펴본 뒤 이 둘을 합쳐 하나의 논지를 펴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돈이 인간의 경제 행위에서 발생했다는 것, 돈은 하나의 제도이며 약속이라는 점 등 인간 삶의 관계를 폭넓게 논의해야 한다. 그 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는 점 등을 논의하면 될 것이다.

이상에서 논의한 사항들을 제시문의 주제와 연관지어 한 주제를 깊이 다루거나 세가지 주제를 폭넓게 다루면 된다.

이 문제에서 IMF, 증시활황 등 현실의 구체적인 예를 드는 학생이 많을 것이다. 너무 상투적이고 평범한 예를 나열하면 좋은 답안이 되지 않는다. 수험생 자신의 경험이나 학생으로서 체험한 예를 드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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