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도 슈샤쿠의 ‘침묵’은 전제군주 시절 예수를 전하기 위해 목숨 걸고 일본에 갔다가 결국 예수의 초상을 밟으며 배교했던 한 신부의 생애를 교황청에 보내는 보고서 형식으로 쓴 작품이다.
그는 인간의 악에 대해 때로 차갑게 침묵하는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부르짖고 절규한다. 그러다가 결국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예수의 초상을 밟으며 그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일본의 톨스토이로 불리기도 하는 엔도는 그의 다른 작품 ‘바다와 독약’에서는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전율할만한 악을 응시한 바 있는데 ‘침묵’에서는 다시 그 악을 선과 대립시킨다. 순교와 배교의 갈림길에 선 한 인간의 핏빛 고뇌를 통해.
주인공인 신부가 예수의 초상화를 밟는 순간 그 초상화는 말한다. “밟아라. 나는 너희에게 짓밟히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 괜찮다. 밟아라. 어서 밟아라”라고.
고백하건대 내 첫 개인전 ‘바보예수’는 바로 그 엔도의 ‘침묵’이 던져준 파장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스무살에 읽은 ‘침묵’의 강렬성이 20년 가까운 세월 뒤에 그림으로 형상화되었던 것이다.
(서울대 미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