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우리나라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입력 1999년 7월 30일 18시 44분


조선시대 법전 ‘경국대전’의 한 구절. ‘관아에서 일하는 여종의 출산휴가는 80일. 산기(産氣)를 보이면 한 달, 출산 후엔 50일. 그 남편에게도 15일의 휴가를 준다.’

이렇게 선진적인 출산휴가 규정이 조선시대에 있었다니, 한 순간에 무너져버리는 우리의 통념….

이 땅 인구의 절반인 여성. 우리는 그 여성의 삶, 여성의 역사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그저 ‘삼종지도(三從之道)’ 정도?

우리의 통념과 무지를 해소하고 여성의 삶을 역사적으로 되짚어보고자 기획한 책이다. 고대부터 광복 직후까지, 다채롭고 흥미로운 소재를 통해 여성의 삶을 집중 조명했다. 필자는 이배용 이화여대교수 등 28명의 한국사 연구자들.

필자들은 가능한 한 많은 사료를 추적, 출생 교육 시집살이 혼인 태교 피임 출산 육아 패션 문화생활 등 여성 삶의 다양한 면모를 밝혀낸다. 그 소재들은 일반인들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롭다.

이 책을 보면 우리 나라 여성의 역사가 얼마나 왜곡돼 있는지를 절감하게 된다. 그 핵심은 ‘삼종지도’와 같은 유교적 여성상(像)이 기껏해야 17세기 중반 이후에 생겨난 이데올로기라는 사실. 이 말은 고려나 조선 전기까지는 남녀의 지위가 비교적 동등했음을 뜻한다. 고려시대 여성은 재산상속권 가계상속권 제사상속권 등에서 차별을 받지 않았다. 딸의 자식인 외손도 가계를 계승할 수 있었고 어머니가 호주가 되기도 했다.

이러한 분위기는 조선 전기까지 이어졌다. 필자들은 다양한 사료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17세기 중반부터 여성의 지위가 떨어지면서 동시에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기 시작한 것은 유교 이데올로기가 일상에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이밖에 흥미로우면서 여성의 애환을 보여주는 내용도 적지 않다. 조선시대 얼굴을 가리지 않고 외출을 했다가 볼기 50대의 형벌에 처할 뻔했던 한 여인, 조선 후기 집 세채 값이 넘는 가발을 선호했을 만큼 극에 달했던 여성들의 사치, 교사 의사 비행사 경찰 기자를 하고 싶어했던 일제 초기의 신여성, 광복 직후 공창(公娼)이 폐지되자 “차라리 사창(私娼)으로 보내달라”고 절규했던 하층 여성들의 힘겨웠던 삶 등. 동학농민군의 여성지도자 이소사, 최초의 여비행사 권기옥과 박경란, 여의사 박에스터 등의 이야기도 읽을 만하다.

흥미와 의미를 모두 충족시켜주는 이 책은 한국 여성사 연구에 있어 매우 값진 성과다. 그러나 이 책이 완성작은 아니다. 아직은 각론이고 출발이다. 그것은 한국 여성사 연구의 한계이기도 하다. 필자들에게 더욱 알찬 연구의 결실을 기대해 본다.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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