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법 시행 18개월]얼마나 뿌리 내렸나?

  • 입력 1999년 5월 30일 19시 18분


《정부가 보유하고 있는 정보를 국민과 공유하는 일은 정책의 투명성을 높이고 부정부패를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특히 국민의 지적수준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수단이 된다는 차원에서 정보공개는 강조된다. 그러나 법으로까지 정보공개를 규정하고 있지만 제대로 실시되지 않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정보공개법 시행 1년의 운영현황과 문제점을 알아본다.》

주부 이모씨(36)는 얼마전 아이가 다니는 학교식당의 위생상태가 궁금해 그 학교의 위생상태에 대한 조사결과를 요구하러 관할 구청에 갔다.

그러나 어느 부서에서 이 문제를 담당하는지 알아내는데만 1시간 이상 걸렸고 기껏 찾아낸 담당부서의 공무원은 “그런 자료를 어디에 사용할 거냐”“자료가 정리되지 않았고 공개할 의무도 없다”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정보공개법이 시행된지 1년반이 지났지만 아직 일선행정기관의 공무원들은 이 제도의 존재여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법 자체는 알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절차를 거쳐 공개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실정이다.

시행 초기에는 시민단체들이 정보공개를 청구하면서 이 제도를 거꾸로 해당기관에 설명하고 공개절차를 밟은 적도 있을 정도. 정보공개법에는 일반 국민이 공개대상정보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공공기관이 주요문서목록을 작성, 비치해놓고 정보공개장소를 확보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이를 제대로 지키는 기관은 거의 없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해 공개대상 기관 10군데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주요문서목록과 정보공개편람을 비치한 곳은 한 군데도 없었고 주관부서를 표시한 곳은 두군데에 불과했다. 그나마 총무과 구석진 곳에 ‘정보공개 접수처’란 팻말이 있어 민원인이 여기를 찾으려면 수많은 사무실을 기웃거리며 문의해야 하는 실정.

숭실대 강경근교수는 “우리나라의 경우 공공기관의 문서기록이 부실하고 전산화는커녕 보존문서와 기록대장의 정리상태가 형편없다”고 말한다.

공공기관들도 할 말은 있다. 정보공개를 전담하는 인력이 필요하지만 최근 정부 조직개편으로 민원인이 알기 쉽게 문서목록을 정리하는 일은 엄두도 못낸다는 것.

그러나 대다수의 공무원은 정보공개에 대해 자신의 권한을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하고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보공개를 거부할 경우 법원에 소송을 낼 수 있지만 대법원 판결까지는 3년 가량 걸린다. 소송에서 공공기관이 패소하면 정보를 공개해야 하지만 다른 사유를 붙여 공개를 거부하면 또다시 소송을 벌여야 한다. 또 패소해도 담당공무원에게 불이익이 전혀 없기 때문에 상당수 공무원들은 ‘일단 거부하고 보자’는 식으로 대응하는 실정.

정보공개법은 원본 자료를 공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행정기관은 정리된 자료만 내놓고 있어 정보의 진위 여부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해당기관이 공개하기 싫은 내용을 제외하더라도 일반인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 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인식이 낮은 것도 정보공개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 중 하나. 법 시행 1년동안 정보공개 청구건수는 총 2만6천여건에 불과했다.

정보공개 대상기관이 3만6천여개인 점을 감안할 때 대상기관당 1건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질적으로도 생산적인 목적을 위한 정보공개 요청은 10%에 불과하고 대다수가 소송 등 개인이나 단체의 피해구제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제도 자체가 인터넷시대에 걸맞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보공개를 신청하고 자료를 입수하기 위해서는 신청인이 해당기관까지 찾아가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때로는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 몰라 한가지 정보를 얻으려고 여러군데를 헤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황주성박사는 “공공기관에 전자적 정보제공을 의무화하고 PC통신이나 인터넷에 정보공개 단일창구를 만들어 이곳에만 들어가면 어떤 정보가 어느 기관에 있는지 누구나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과다한 정보 열람수수료와 정보공개까지 걸리는 기간도 문제.

공공기관의 정보를 열람하려면 장당 20원의 열람수수료를 내야 하는데 광역지자체가 보관하고 있는 1년치 지출관련서류를 보려면 수수료가 수십만원에 이른다. 참여연대는 최근 지방국토관리청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수수료가 4백60만원에 달해 열람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현행법은 또 정보공개에 걸리는 기간을 최대 15일로 규정하고 있어 신청인이 해당기관을 재차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15일이 지나면 정보가 필요없는 경우도 있다. 경실련은 얼마전 은행감독원에 청구한 내용을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입수하기도 했다.

〈김학진·성동기기자〉jean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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