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정길연 作 「종이꽃」

  • 입력 1999년 5월 19일 09시 18분


▼「종이꽃」정길연 지음 이룸 펴냄 324쪽 7,500원 ▼

별거중인 부부가 있다. 별거의 사유는 아내 쪽의 일방적인 임신중절.그런 아내가 지워버린 아이에 대해 아무말 없이 종이꽃 만들기에 몰두하자 남편은 분노해 소리지른다. "이따위 종이꽃이, 생명도 향기도 없이 이리저리 자르고 구긴 종이나부랭이가 산목숨보다 더 중요해 보이디? 넌 미쳤어. 알어?"

여자는 아무말 없이 종이꽃을 접는다. 사랑을 연기했고, 사랑이 끝난 후의 나날을 연기로 살았고, 종내는 상실의 슬픔까지 연기해내는 자신의 위선을 생각하며 여자는 계속해서 종이꽃을 접는다. 그리고 남자의 입장.

한 여자와 한 남자의 입장을 교차해서 보여주는 이 소설을 보려면 주제 위에 두텁게 더께앉은 단어들을 헤짚어 볼 인내심이 필요하다. 인내심을 갖고 더디게 글을 읽기로 작정하면 외려 속도가 붙는다.

자신이 태어나자 죽은 아버지, 아비 명줄을 끊어 제 탯줄에 이어붙인 모진 년이라는 앙칼진 넋두리를 퍼붓는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임신, 자신의 아이가 남자를 죽이고 태어날 운명일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여자,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 드러나지 않은 화해무드를 남기고 소설은 끝난다.

멋진 주제만큼 글이 따라주지 못한 것 같아서 속이 탄다.

작가의 이전작「변명」을 읽고 마음에 든 독자라면 그 후일담을 좀더 이어갈 수 있는 작품이 두어개 더 있다.

이혼한 뒤 아이를 데리고 혼자 살아가는 여자의 일상을 담은 소설들이다. 그 외에 일그러진 가족관계를 다룬 작품이 또 두어개. 그리고 80년대의 후일담소설을 다룬 작품이 서너개쯤 된다.

15년동안 글을 써온 전업작가에게 누가 되는 말일지 모르지만

이 책은 좋은 책일지는 몰라도 잘 쓴 문장으로 엮어진 책은 아닌 듯.

아름다운 단어와 시적인 수사들은 질리도록 나오는데 비문인지 오독인지 도무지 잘 읽히지 않는다.

이람<마이다스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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