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갈피]佛동네서점은 철학 토론하는 문화사랑방

  • 입력 1999년 5월 14일 19시 08분


프랑스 중서부 도시 발랑스의 ‘라퐁텐서점’. 손님이 원하는 책을 골라들고 금방 계산대로 가서 서는 모습은 보기 어렵다. 어떤 이들은 책을 사지도 않고 매장 한편에 앉아 수다를 떨고 또 어떤 이는 주인과 책을 놓고 장시간 품평회를 벌인다.

라퐁텐서점은 한번 폐업했다 4년전 다시 문을 열었다. 슈퍼마켓에서 베스트셀러와 문고판 등을 판매하자 서점을 찾는 사람들의 숫자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이다. 인구 10만명의 발랑스에서만 15년간 12개의 서점이 사라졌다.

재개업한 뒤 주인 이봉 베시에르는 주민들을 위한 문화강좌부터 마련했다. ‘현대철학의 관점으로 본 인간학’에서 ‘빵을 맛있게 굽는 법’까지 강의내용은 주민들의 요구에 맞춰 다양하다. 최근에는 한국을 주빈국으로 초청한 발랑스 박람회에 맞춰 한국책 특별전을 마련하기도 했다.

“서점은 주민들이 아무때나 들러 자유롭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열린 공간, 지역의 문화예술인들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정거장이 돼야 합니다. 그게 바로 슈퍼마켓 서적판매대와 서점의 차이지요.”(베시에르)

책값을 깎아파는 대형할인매장과 화려한 대형서점 틈바구니에 끼어 생존경쟁을 벌이는 한국의 동네서점들. 지역주민을 서점의 벗으로 만듦으로써 생존근거를 마련하는 라퐁텐의 경험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다.

〈발랑스〓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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