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미와…」열연 김혜자,「무식한 어머니」연기변신

  • 입력 1999년 4월 27일 19시 35분


김혜자는 한국적 어머니의 이미지를 지닌 배우다. 환갑이 넘은 할머니도 “당신이 우리 엄마와 꼭 닮았다”고 할 정도다. 그런그가 요즘 천연덕스럽게 그려내는 새로운 어머니상 ‘필녀’로 장안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MBC주말극 ‘장미와 콩나물’에서다. 지난주 그가 박원숙과 시장통에서 싸우는 장면은 “진짜인 줄 알았다”는 소리까지 들었다.

극중 필녀는 촌스럽고 배운 건 없지만 자기 나름대로 세상 이치를 꿰뚫고 있는 시어머니. 고집센 남편에 주눅들고 잘난 며느리들에게 둘러싸여 있어도 할 말은 다 한다. 적당히 무식하면서도 자기 감정에 솔직한 그를 미워하기는 어렵다.

◇김혜자와 필녀

“37년간 연기하면서 머리 끄댕이 잡고 싸우기는 처음이에요. 이거 NG나면 큰일이다 싶더라구요. (박)원숙이는 정말 대본에 쓰여진대로 손으로 내 입을 찢듯이 당기는거 있죠.”

김혜자는 필녀가 자신과 너무 다르고, 해보지 않은 배역이라 캐스팅 요청이 들어오자마자 덥석 받아들였단다. 필녀를 맞기 전 준비부터 단단히 했다. 꽤 좋은 미장원을 찾아 “1년에 한번만 해도 안풀리게 ‘아프리카 여자’같은 파마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필녀가 남편과 자식 틈바구니에서 옷도 제대로 못 살 것 같아서 의상은 남자 바지를 줄여서 입고 있다. 인터뷰중 나이를 묻자 김혜자는 대답대신 “늙는게 정말 싫다”고 했다. “늙는 건 쓸쓸해요. 얼굴은 젊었을 때 그대로 죽을 수 없을까요”라고 할 때는 영락없이 드라마의 필녀와 닮았다.

◇필녀의 대사들

필녀는 초등학교만 나왔지만 중학교 사환으로 일한 적이 있어 문자 속이 제법 깊다. 사설조로 늘어지는 말투이지만 정곡을 찌르는 말로 ‘적(敵)’들을 꼼짝못하게 만든다.

고함만 지르고 곁을 내주지 않는 남편(김성겸 분)은 두려우면서도 얄미운 존재. 필녀는 “당신, 정대한테 지죠. 그 정대 내가 낳았어요”며 남편의 기를 죽인다. 남편과 머리 큰 아들들에게 실망한 필녀는 시어머니를 가르키려는 둘째 며느리(최진실)에게 할 말이 많다.

“무식해서 좋은 점이 뭔지 아니. 그 핑계로 하고 싶은 말 맘놓고 하는 거다.” “신랑이 미우면 ‘시’자 들어간 개두 밉다더냐.” “마누라는 인륜이고 에미는 천륜이다.”

◇작가가 본 김혜자

작가 정성주는 MBC ‘추억’ ‘신데렐라’ 등을 쓴 뒤 꼭 하고 싶었던 드라마가 필녀 이야기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 우리 집에서 일을 돕던 충청도 출신의 언니가 모델이예요. 필녀라는 인물을 그리면서 꼭 김혜자라는 배우가 그 배역을 맡아주기를 원했지요.”

그는 “내가 필녀를 만들었지만 이제 ‘김혜자의 필녀’가 벌떡 일어나 혼자 돌아다니고 있다”며 자신이 대본에 쓰는 지문보다 섬세한 연기와 깊이를 김혜자에게서 느낀다고 말했다.

〈김갑식기자〉gs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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