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나는 그에게…」, DJ에게 바치는 新용비어천가?

  • 입력 1999년 3월 30일 19시 28분


한국의 대표적인 시인 51명이 김대중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에 바라는 바를 시로 썼다. 20일 출간된 시집 ‘나는 그에게 한마디만 하고 싶다’(인동출판사).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기념하고 그 의미를 문학적으로 조명했다”는 게 기획의도. 인동출판사는 지난2월 ‘김대중자서전’을 펴냈다.

고은 문병란 조태일 김준태 박노해 도종환 정양(이상 무순)등 기고시인의 면면은 화려하다. 수록시들도 귀에 솔깃한 칭찬부터 쓴소리까지 다채롭다.

‘…이날 이때까지/내가 찍은 사람이 당선되는 건 처음이라고/살아 생전 이런 날이 다 있느냐고/이젠 한 풀었다고/머리 흰 칠순 어머님은 접견장에서/처녀처럼 환하게 환하게 우신다’(박노해 ‘어머님의 첫 승리’중)며 정권교체를 기뻐하기도 하고 ‘…월세 이천원짜리 단칸방에 여섯 식구/모여살 때보다 더 힘들었던 건/실패한 아버지 찾아 어머니마저 동생들 데리고/서울 변두리로 떠난 뒤 소식끊겨/양식이 바닥났을 때였다’(도종환 ‘남쪽의 아침’)고 김대통령이 풀어나가야할 사회적 과제를 적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책 말미에 실린 김대중대통령의 자작시 3편과 해설은 쓴소리든 단소리든 이 시집이 ‘국민의 정부에 보내는 민심보고서’라는 출판사의 주장을 무색케 한다.

시조‘옥중단시’등 3편의 작품에 출판사는 ‘우리 민족의 고유시가인 시조의 형식을 완벽하게 구사한 작품.…김대통령의 높은 문학적 감성과 식견에 감동으로 대한다’(시조시인 유재영)는 전문가 해설을 붙였다.

시집을 기획, 편집한 이승철시인(인동출판사 편집위원)은 “원고청탁서에 대통령의 시와 해설이 함께 수록된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지만 사후에 그 문제로 항의해온 시인은 없었다”고 밝혔다.

출판사측 주장대로 ‘현직 대통령이 현역 시인들에 의해 작품화된 것은 전례없는 문학사적 사건’이다.

그러나 ‘현직 대통령에 대해 시를 쓴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없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주장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대통령의 자작시 예찬으로 두리뭉실 감싸버린 고언(苦言)들이 뭐 그리 용기를 내야할만큼 뼈아픈 소리로 읽힐까.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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