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스님 『조계사분쟁,잿밥싸움 당장 그만두라』

  • 입력 1998년 12월 11일 19시 36분


법정(法頂)스님은 93년부터 6년째 한달에 한번 ‘산에는 꽃이 피네’라는 칼럼을 동아일보에 써왔다. 그런 스님이 어느날 ‘조계사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글을 쓰지 않겠다고 연락해왔다. “중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워 글을 쓸 수가 없다”는 이유였다.

“죄송합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승복 입은 사람으로서 국민 뵐 낯이 없어요. 자기 집안 일도 건사못하는 주제에 국민을 상대로 이러쿵저러쿵 글을 쓴다는게 너무 면목없고 양심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칩거하고 싶습니다.”

―이번 종단 분규로 마음의 상처가 크신 것 같습니다.

“수행자인 승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수행자들이 주기적으로, 잊어버릴만 하면 싸우니 정말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얼마전 서울에 왔을 때 지하철에서 40대 신사가 신문을 보다 ‘중놈들 또 지랄이군’이라고 욕하는 걸 들었습니다. 귀는 면구스러웠지만 사실은 사실이니 고개를 숙일 수밖에요.”

―조계사에서 싸움하는 스님들도 한때는 산속에서 정진했었던 사람들이었을텐데 분규가 이처럼 반복되는 근본적 원인은 어디 있다고 보십니까.

“출가정신이 결여돼 있기 때문이지요. 부모 형제 곁을 떠나 출가할 때는 대단한 결심을 했을 겁니다. 그 출가할 때의 소망은 지금 싸우시는 분들도 다 같았을 겁니다. 그런데 출가후 수행자의 맑은 업(業)을 제대로 익히지 않은 채 세속의 업에 맛을 들이다보니 하루하루 출가정신은 잊어가고 엉뚱한 길로 빠져버린 겁니다.”

―싸우는 스님들도 제각기 명분은 있는 것 같습니다.

“종단 내에서 교리나 선을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면 좋은 일이지요. 하지만 잿밥, 종권을 놓고 벌이는 싸움은 안돼요. 속담에 ‘중벼슬은 닭벼슬만도 못하다’고 하는데 그 중벼슬, 장(長)자리 한번 해보겠다고 스님들이 싸우다니요. 더구나 자비를 첫째 덕목으로 삼는 불교에서 폭력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할 수 없습니다. 부처님이 보면 ‘어떻게 저들이 내 제자냐’고 펄쩍 뛰실 겁니다.”

―대다수 스님들은 산속에 계셔서 말이 없으니 누가 이 싸움을 말릴 수 있겠습니까.

“양식있는 신도, 뜻있는 스님들이 나서야합니다. 종단구조를 부처님 가르침에 근본을 둬서 수행과 교화 구조로 재편해야합니다. 그같은 과제는 1천6백년간 이어온 한국불교의 역할을 감안할 때 온 국민의 몫이기도 합니다. 종단은 승려들만의 단체가 아닙니다. 온국민이 애정을 갖고 못된 승려가 함부로 작태를 부리지 못하도록 꾸준히 감시해야 합니다. 승려들이 싸우는 절에는 신도들이 결속해서 안가야해요. 가난한 절에선 다툼이 없습니다. 신도들이 못된 스님은 배고프게 만들어야돼요. 사회엔 실직자 노숙자가 넘쳐나는데 중들만 배불러 싸우고 있으니, 참 부끄럽고 송구스럽습니다. 그리고 저를 포함해 승려들은 다들 산속을 찾아올때의 그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합니다. 아마 싸움하는 승려들 본인들도 자신들이 그렇게 되리라곤 생각못했을 거고 마음속에 큰 갈등이 있을 겁니다. 첫 마음으로 돌아가면 그 갈등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선거제도를 비롯한 종단 제도도 분규의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총무원이란 기구가 있는 한 다툼이 끊일 수가 없어요. 막대한 예산 인사권이 있으니 부패하지 않을 수 없지요. 사실 총무원 제도는 일제의 잔재입니다. 권력이 불교를 통제하기 쉽게 하려고 만들어 놓은 거예요. 이제 중앙엔 연락기구 정도만 남겨두고 본산(本山)중심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산 사이에 선의의 경쟁도 이뤄지고 사찰 나름대로의 사풍(寺風)이 전승되게 해야합니다. 그에 앞서 본산도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현재의 24개 본산을 재조정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승려 배출 제도에도 문제가 있는 것 아닙니까.

“문제는 자질입니다. 정치판에 가야할 사람들이 버스를 잘못 탄 경우가 없지 않습니다. 총무원 주변에는 돈과 명예가 얽힌 세속적 일에 기웃대는 승려들이 늘 있어 왔습니다. 하지만 수행 정진에 여념없는 대다수 승려들은 그런데 발붙이지 않아요. 적절한 비유가 아닐지 모르지만 일반 사회에서도 생업에 바쁜 사람이 통반장하려고 하겠습니까.”

―이번 사태로 월하(月下)종정에 대해서도 안좋은 말이 나오고 있는데요.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선배분이신데 참 안타깝습니다. 주변 젊은 사람들이 제대로 모시지 못한 탓이지요. 종정은 덕으로 종단을 이끌어가는 어른의 기능을 하시고 종무행정에는 말려들지 말았어야 했는데….”

―누구보다도 불교 신도들이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은 것 같습니다.

“미꾸라지 몇마리가 일시적으로 강을 흐리게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강물은 늘 흘러가게 마련입니다. 저런 탁한 기운이 오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흐르는 강물에 씻겨 나갑니다. 그리고 신도들이 믿고 의지할 대상은 스님이 아니라 부처님의 법입니다. 사람이 아니라 진리 불법을 등불 삼으시길 당부드리고 싶습니다. 몇몇 승려가 싸운다고 불법(佛法)자체가 훼손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단은 스님들만의 집단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사실 산중에 있는 스님들에겐 이번 사태가 ‘중놈 소리 안들으려면 한눈 팔지 말고 더 정진해야한다’는 교훈, 반면교사(反面敎師)가 되고 있습니다.”

7년째 강원도 두메산골 버려진 집에 홀로 칩거하는 법정스님. 20대 중반에 출가해 6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생활을 산속에서 수행과 집필로 보냈다. 그의 승려 이력엔 오로지 ‘송광사 승려’라고만 기록돼 있을뿐 주지 자리 한번 맡아본 적 없다.

“제가 있는 곳은 요즘 거의 매일 얼음이 얼고 눈이 내립니다. 잎을 다 떨치고 빈 가지만 남은 나무들을 보며 생각합니다. 그게 나무의 본래 모습이지요. 다 털어버려야만 새 잎, 새 싹이 나옵니다. 겨울산에서 경전에서도 가르치지 않는 걸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전기도 전화도 없는 거의 원시상태지만 문명에서 벗어나 저의 ‘야성적 잠재력’을 마음대로 발휘할 수 있어요. 편리한데 살면 기질적으로 약해져요. 자연은 위대한 교사입니다.”

―계절도 겨울이지만 사람들 마음도 IMF때문에 꽁꽁 얼어붙은 채 끝없는 ‘번뇌’의 연속입니다.

“전 국민이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늘 지속되는 건 없습니다. 참고 견디면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고통받고 있는 분들께는 너무 죄송한 얘기지만 IMF사태가 없었다면 우리 사회가 어디까지 떨어졌을까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마구 버리고 탐닉하고…. 저는 이 고통을 우주적인 메시지로 수용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경제적 어려움도 어려움이지만 정신적 황폐가 더 문제입니다. 국민소득이 6천달러로 떨어졌다지만 60,70년대보다는 물질적으로 낫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인간적으론 그때보다 훨씬 더 타락해 있어요. 결국 인생에서 남는 건 물질의 과다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계기에 자기자신을 성찰하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한사코 인터뷰를 거절하는 그를 8일 오후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에서 만났다. 스님은 검은 벙거지를 쓰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여전히 맑고 자세는 꼿꼿했다.

〈한진수·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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