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가을 부산은 「핑크 시네마」천국

  • 입력 1998년 9월 17일 19시 20분


올 가을, 부산은 진한 사랑에 빠진다. 24일 개막하는 제3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선보일 한국영화의 상당수가 남녀간의 사랑, 그중에서도 농도짙은 섹스를 다룬 멜로물들이다.

이번 영화제에 출품된 한국장·단편영화는 최근 제작을 마친 장편 극영화 19편을 포함해 59편. 특히 다음달초 추석대목에 개봉예정인, 또 제작과정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화제를 모았던 멜로물들이 대부분 이번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에게 처음 소개된다. 하반기 우리영화의 흐름을 부산에서 먼저 보게 되는 셈.

유부녀와 연하 미혼남의 불륜을 그린 ‘정사’(감독 이재용), 미혼여성들의 성을 가벼우면서도 노골적인 터치로 다룬 ‘처녀들의 저녁식사’(임상수), 창녀와 여대생의 묘한 우정을 담은 ‘파란 대문’(김기덕), 잡지사 여기자와 신참 사진기자의 미묘한 사랑싸움 ‘키스할까요’(김태균 감독)…. 예매 시작후 관객들의 반응도 이같은 멜로, 섹스 소재 영화들에서 비교적 높게 나타나고 있다.

‘가을의 멜로영화붐’은 사실 올해만의 현상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번 영화제 출품작을 포함한 올가을의 멜로물들이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섹스를 비롯한 남녀간의 사랑에 대한 감독들의 집요할 만큼 철저한 미학적자세 때문이다.

IMF이후 떠오른 복고풍 정서와 순애(純愛)에 대한 관객의 갈증을 채워주면서도 나아가 ‘아름답게 더 아름답게’ 섹스를 표현해보려는 젊은 신예 감독들의 집요한 노력이 화면에 배어나온다.

멜로영화의 장르도 세분화됐다. ‘실락원’ ‘정사’ 등의 에로틱멜로, ‘약속’ ‘남자의 향기’와 같은 액션멜로, ‘키스할까요’ ‘미술관옆에 동물원’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면’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 등의 로맨틱코미디, ‘어게인’ 등의 판타지멜로등 다양한 방식으로 사랑이 표현된다.

IMF이후 상반기 한국영화의 제작편수는 지난해에 비해 줄어들었다(97년 28편, 98년 17편). 그러나 제작여건이 나빠지자 ‘될 영화만 확실히 만든다’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편당 관객수는 되레 늘어나는 추세도 주목할만 하다. 연출 연기 시나리오 등에서 일정 수준에 오른 영화만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올 여름 극장가를 양분했던 SF액션물과 판타지공포물의 홍수에서 벗어나 이제 가을 극장가는 부산에서부터 올라올 ‘핑크빛 국산단풍’에 물들 전망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 ‘마스크 오브 조로’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에 맞서 이들 한국 멜로물들이 얼마나 관객들의 가슴을 두드릴지는 미지수지만.

〈이기홍기자〉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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