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이라도 더』 水魔현장서 꽃핀 지리산의 세義人

  • 입력 1998년 8월 2일 19시 44분


칠흑같은 어둠속에 덮친 폭우 그리고 거센 물살. 그속에서도 ‘목숨’을 살려내기 위해 몸부림친 사람들이 있었다. 잠든 야영객을 대피시키다 스스로 물살에 휩쓸린 공무원, 그리고 떠내려가는 목숨을 건지려다 끝내 수마(水魔)에 걸려든 구조반장.

아비규환의 그 밤, 이웃을 위해 ‘나’를 내던진 세사람의 의로운 외침, 안간힘의 궤적을 더듬어 본다.

◇산청 김원길씨

경남 산청군 시천면 김원길(金元吉·56)부면장은 1일 오전 0시30분경 시천면 덕천강변 자양보 유원지로 달려가 야영중이던 1백여명을 긴급 대피시켰다.

집에서 잠을 자다 면사무소 당직인 이만수씨(51)로부터 “면사무소 지붕에 물이 샌다”는 전화를 받은 김씨는 직감적으로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 확성기가 설치된 관용 트럭을 몰고 곧바로 강가로 내달았다.

확성기로 계속 “물이 불어나고 있으니 빨리 대피하라”고 외쳤으나 처음에 야영객들은 “무슨 일이냐”고 되레 투덜거리며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텐트를 향해 돌을 던지고 막대기로 치면서 방송을 계속했고 그때서야 야영객들은 불어난 강물을 보고 철수 채비를 서둘렀다. 강물은 급격히 불어나 차량이 떠내려올 정도였다.

그는 야영객이 모두 대피한 것을 확인한 뒤 빠져 나오려고 차에 올랐으나 차가 물살에 밀려 20m 가량 떠내려갔다. 다급해진 그는 차에서 빠져 나와 물살이 약한 곳을 찾아 헤엄쳐 나왔다. 이때가 오전 1시50분. 트럭은 더 떠내려가다 얕은 곳에 걸려 다음날에야 건져낼 수 있었다.

◇남원 홍욱이씨

“야영객 여러분, 빨리 일어나서 큰나무 위로 올라 가십시오.”

1일 오전 0시반 전북 남원시 산내면 지리산 뱀사골 계곡 아래 솔밭 야영장 부근에서 한솔가든을 운영하는 홍욱이(洪旭伊·39)씨는 남원시청에서 가게에 설치해 놓은 비상용앰프를 켜고 목이 터져라 ‘긴급 대피’를 외쳤다.

스포츠광인 홍씨는 이날 오전 1시부터 중계되는 박세리 골프경기를 보기 위해 눈을 떴다가 밖에서 들리는 엄청난 굉음에 놀라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한치앞도 볼 수 없는 엄청난 폭우 속에 계곡에서는 급류에 휩쓸려 집채만한 바위가 굴러 내리고 있었다.

홍씨는 남원시청에 연락, 급박한 상황을 설명하고 119구조대와 헬기지원을 요청했다.

그는 이어 야영객들에게 계곡을 건너려 하지 말고 높은 곳에 올라가 구조를 기다려 달라고 계속 외쳤다.

그는 30분후 도착한 119구조대와 함께 10여m 계곡 사이에 밧줄을 걸고 도르래를 이용해 새벽4시경 49명의 야영객을 모두 구했다.

◇사천 이정근 소방장

1일오후 폭우를 뚫고 인명구조 작업을 벌이다 순직한 사천소방서 이정근(李政根·46·소방장)구조반장은 언제 어디서나 앞장서 몸을 던지는 ‘의인’이었다.

사고 당시에도 경남 하동군 옥종면 덕천강은 시뻘건 황톳물이 거세게 소용돌이쳤으나 그는 로프에 의지, 이내원(李來遠·35)구조구급대장과 함께 몸을 던졌다.

그리고 10여분 후 동료들이 발을 구르며 지켜보는 가운데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고 말았다. 인공호흡 등 응급처치에도 불구하고 그는 사랑하는 가족과 동료들을 남겨둔채 이날 밤 숨을 거뒀다. 이 대장은 중태.

삼천포공고를 졸업하고 77년 소방서에 발을 들여놓은 이반장은 내무부장관 표창, 도지사 표창 등 그동안 11차례나 상을 탔고 84년에는 ‘경남 소방왕 선발대회’에서 2위를 하기도 했다.

〈산청·남원·사천〓특별취재반〉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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