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문화인프라 ①]「한해살이」급급 公共공연장

  • 입력 1998년 2월 27일 20시 07분


《 문화인프라가 위기다. 우리사회의 공공 문화서비스 체계는 총체적 동맥경화에 빠져있다. 사회전반의 개방화 자율화 바람속에서도 공연장 도서관 박물관 등 전국 곳곳의 문화시설은 공급자 중심, 관(官)중심의 경직성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수많은 세금을 잡아먹으면서도 문화의 수요자를 향해 다가오는 노력을 포기한지 오래다. 소수 공무원과 예술가들이 나태속에 안주하는 ‘속편한 일자리’라는 지적도 높다. 무엇을 어떻게 고쳐야 하나. 국립중앙극장 민영화방침을 계기로 2회에 걸쳐 각종 문화시설의 실태와 문제점, 개선방향을 정리해 본다.》

서울 남산기슭. 이곳에 위치한 국립중앙극장이 어수선하다. 새정부의 민영화방침 때문이다.

극장 산하에는 국립극단 국립창극단 등 7개의 예술단체가 있다. 관계자들은 정부의 지원규모, 극장운영방식 등이 어떻게 변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자리’가 어떻게 될지도 걱정이다.

지난해 이 극장이 사용한 예산은 1백71억 6천만원. 그러나 1백77회의 자체공연을 통해 벌어들인 돈은 4억5천만원이었다.

적자가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어느 나라나 정부지원으로 문화를 육성하고 있고 이를 통해 싼 가격으로 수준높은 공연을 관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예산을 사용하는 구조에 있다.

정부 예산회계법의 적용을 받는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은 수입과 지출을 맞출 필요가 없다. 지출에 필요한 예산은 전년도를 참고해 큰 변동없이 책정된다. 수입을 올리면 그대로 국가와 시 재정에 편입된다.

공연을 기획해 예산을 책정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예산에 공연을 끼워맞추다 보니 새로운 기획이 생겨날 공간이 극히 적다.

예산이 1년단위로 편성되다보니 장기적인 기획이 나오지 않는다. 수입이 공연장 자체를 위해 쓰이지 않으므로 애써 일을 만들 의욕도 가지지 못한다. 국가의 문화수준이 극히 낙후돼 있던 권위주의 정권 시절, 정권홍보와 국가행사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만든 극장제도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 산하인 세종문화회관의 경우 지난해 당시 조순시장이 문화예술계 인사로 관장을 선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후 문화계가 높은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가 시장직을 떠난 이후 이 문제는 표류중이다.

세종문화회관을 깊이 들여다보면 여러가지 문제점이 첩첩이 쌓여있다. 관리직 직원수는 1백70명이 넘지만 마케팅 전담부서조차 없다.

홍보부는 매달 간행되는 소식지를 발행할 뿐 개별 공연의 홍보에는 손을 못대고 있다. 기획부터 홍보까지 개별 예술단체의 손에 맡겨두는 형태다.

‘서비스정신’을 찾는 것은 사치. 권위주의 정권시절 사복형사가 경계근무하던 이 극장은 지금까지도 로비공간을 폐쇄하고 있다.

중앙계단위의 공간은 시낭송 소음악회 등 작은 문화행사를 위한 ‘문화사랑방’으로 바뀌었지만 지금은 찻집에 불과하다.

지난해 예산은 1백67억원. 재정자립도는 17%선에 머물러있다.

개관당시부터 악명높았던 대강당의 음향은 음향판이 낡아지면서 악화일로를 거듭하고 있다.

문화예술계에는 국립극장과 세종문화회관 두 극장을 독립법인화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수지타산도, 공연의 품질도 책임질 필요가 없는 현행의 제도로 극장의 장기적 발전은 요원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원을 줄이기 위한 독립법인화는 의미가 없으며, 기존의 예산상 적자가 발생하던 부분만큼을 교부금으로 지원해주어야 한다는 것이 문화계의 요구다.

구미의 관공립 공연장도 최소 60%이상의 예산을 국가 지자체 공익기금 등에서 지원받고 있다.

현재 법인형태로 운영되는 공연장으로는 서울 예술의전당이 있다. 96년의 경우 이 공연장은 국고 및 공익자금에서 69억원을 지원받았고 1백6억원의 자체수익을 올렸다.

그러나 수지균형을 맞추어야 하는 나머지 예술의전당은 종종 대관문제 등에서 ‘비예술적’인 잡음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획전시 등이 있을 경우 종종 미술관 앞마당은 문화가 실종된 ‘장터’로 변한다.

‘군식구’가 없는 것은 장점일 수 있지만 오케스트라 등 필수적인 자체 공연단체도 갖추지 못했다. 국립극장이나 세종문화회관이 법인화 경로를 밟더라도 현재의 예술의 전당이 ‘모델’이 될 수는 없다는 얘기다.

문화예술계는 무엇보다도 나라의 문화방향타로 기능해야할 이 극장들에 장기적인‘비전’이 없다는 점을 염려하고 있다.

홍승찬 한국예술종합학교교수는 “각 극장마다 성격을 결정, 국가지원을 통해 예술 애호층 확대에 기여할 것인지 재정자립에 제1의 목표를 둘 것인지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탁계석 21세기 문화광장 대표는 “현재처럼 각 극장이 비슷한 레퍼토리를 두고 경쟁하기보다는 세종문화회관의 경우 대중적 공연, 국립극장은 전통공연 등으로 특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윤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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