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 『휘청』…제작비 상승-유통사 연쇄부도

  • 입력 1998년 2월 20일 19시 33분


유통사의 연쇄부도, 제작원가상승, 책발행감소…. IMF시대를 맞아 출판계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출판인들은 정부에 긴급 자금지원을 요청하고 있으나 사정은 여의치 않다.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를 유통구조의 문제를 해결하는 계기로 삼고 스스로 ‘거품’을 제거하려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위기의 실태와 대책 등을 살펴본다. ▼발행 감소〓도서발행 추이를 보면 출판계의 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지난해 12월 발행된 서적 종류는 총 2천8백67종. 올해 1월은 2천1백53종으로 전월대비 33.1%가 줄었다. 분야별로는 문학 31.7%, 학습참고서 51.6%, 만화 48.9%. 이는 출판시장이 더욱 위축될 것임을 보여준다. 서점의 매출도 떨어지고 있다. 교보문고의 한 관계자는 “1월 매출액이 지난해 12월에 비해 10% 이상 감소했다”며 당분간 매출액 감소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 ▼유통회사 부도〓40년 역사를 지닌 출판도매상 송인이 2일 부도를 냈다. 연매출 2백억∼2백50억원 규모의 랭킹 3위업체 송인의 부도로 많은 출판사는 4억원에서 수천만원까지 피해를 보았다. 어음할인의 길이 막히면서 군소 서적 도매상이 줄줄이 부도를 내던 끝에 터진 대형사고였다. 그후 많은 대형 출판도매상이 부도의 위기 혹은 뜬소문에 시달리고 있다. B, H, K사 등 굵직한 회사의 부도설이 나돌며 출판사나 유통회사 모두 거래를 꺼리고 있다. 유통마비는 출판인들의 서적 발행의욕을 크게 떨어뜨리는 등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출판계 대응〓출판인들은 위기에 공동대응하기 위해 10일 ‘출판유통발전위원회’(대표 김언호한길사사장)를 발족하고 정부에 긴급 자금지원을 요청하고 나섰다. 한때 2백억원저리융자란 말이 나왔지만 현재로서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또 도서 대여점이 출판계에 악영향을 주고 있다며 공식적으로 ‘대여권’개념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부 출판사는 무조건 고급종이에 호화제본을 하던 관행을 파괴하여 제작과정의 ‘거품’을 제거하는 자구책을 시도하고 있다. 본문용지를 모조지에서 재생지로 바꾸고 책안쪽으로 접히는 표지(속칭 ‘날개’)를 없애고 있다. 또 인쇄방식도 4도인쇄에서 2도 혹은 단색으로 바꾼 ‘보급판’을 내놓고 있다. 도서출판 푸른숲의 경우 이같은 방법으로 지난해 9월 초판발행시 정가 6천원이던 ‘영혼을 위한 닭고기 수프’ 보급판 가격을 4천9백원으로 낮추었다. 여건 악화에 따른 책값 인상요인을 흡수하는데 성공한 것이다. 출판사측은 “제작원가의 44.5%를 절감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김영사도 마찬가지 방법으로 ‘IMF시대―당신의 상식 뒤집어야 살 수 있다’의 가격을 8천원에서 5천원으로 크게 낮추었다. 김영사측은 올해 1백만부를 찍을 경우 2억6천만∼3억원정도 원가를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는 매출액을 30억원정도 늘린 효과나 마찬가지. ▼대안모색〓민음사 박맹호사장은 “서적유통회사의 전문화를 통해 유통의 근대화를 이뤄야 한다. 또 쏟아져 나오는 출판물을 판매할 대형매장을 확보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푸른숲 김혜경사장은 “자체대리점도 갖추지 않은 유통회사가 너무 많다. 아직 찬반양론이 있지만 가치가 있는 재고도서를 선별해 판매하는 재고처분 전문판매점도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출판사 대표는 “영세서적상들의 ‘생존권침해’주장에 막혀 중단된 교보문고의 대형매장 설립계획도 계속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보문고측은 “영세서점주의 반발이 여전한데다 불황인데 굳이 대형매장을 개설할 이유가 없다”며 “그러나 출판계의 공식요청이 있다면 검토해볼 여지는 있다”고 밝혔다. 교보문고는 수년전 서울에 이어 6대도시에 4백∼5백평 규모의 대형서점을 개설하려 했으나 반발때문에 성남과 대전에 1백평규모의 서점을 내는데 그쳤다. ▼정부대책〓문화체육부는 출판계, 특히 사회적인 영향력이 큰 학술출판계를 적극 지원하기 위해 초판 1천권을 구입해 공공도서관에 배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소요예산은 연간 45억∼50억원으로 내년 예산에 반영한다는 계획이다. 이와 함께 튼튼한 출판문화는 결국 ‘책을 읽는 풍토’의 산물이란 점을 고려해 대학입시 논술고사와 면접 기준을 가능한 한 많은 책을 읽은 수험생에게 유리하도록 하는 방안을 해당 부처와 협의해나갈 방침이다. 〈조헌주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