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난 첫사랑…사별-이혼뒤 재결합 늘어

  • 입력 1998년 2월 3일 20시 27분


하룻밤 지나면 잊혀지는, 모래알처럼 푸석푸석한 찰나적 사랑이 판을 치는 시대…. 그러나 아직도 가슴속 깊이 인두로 찍은 듯한 첫사랑의 기억을 잊지 못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최근 들어선 첫사랑이 다른 사람의 배우자가 돼 버린 뒤에도 기약없는 그리움의 밤을 보내다 그 사람이 이혼, 혹은 사별(死別)한 뒤 다시 구애해 결혼하는 현대판 순애보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지난해 말 결혼한 회사원 박모씨(35)가 아내와 처음 만난 것은 15년전. 대학신입생 시절 같은 지방 출신 학생들의 모임인 향우회에서였다. 긴머리에 눈빛이 초롱초롱한 한살 연상의 여학생은 그러나 박씨의 사랑을 추억으로 접어두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버렸다. 상처를 간직한 채 졸업과 취업. 주변에선 “노총각 귀신 된다”는 걱정이 잦아졌지만 다른 곳엔 마음을 줄 수 없었다. 어느날 우연히 전해진 첫사랑의 이혼소식. 이혼녀라는 것도,초등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는 여자라는 것도 박씨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술에 취하면 첫사랑의 집앞에 달려가 주정 섞인 세레나데를 부르기 1년반. 정성에 감읍 했음일까. 박씨는 마침내 긴머리 초롱한 눈빛의 첫사랑 여인을 평생 배필로 맞이할 수 있었다. 최근 결혼한 전직 스튜어디스 김모씨(28). 처녀시절 언론사 직원인 지금의 남편을 짝사랑했다. 비행을 마치고 돌아올 때마다 선물공세를 퍼붓고 자존심도 굽힌 채 사랑을 고백했지만 남자는 차가웠다. 결국 남자는 다른 여자와 선을 보고 3개월만에 결혼해버렸다.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다리겠어요.” 기약없는 ‘외사랑’의 나날을 보내던 김씨에게 6개월 후 남자가 이혼했다는 ‘낭보’가 전해졌다. 다시 다가간 김씨. 6개월 후 그의 빈자리를 메워주었다. 사회학자들은 이 같은 순애보의 증가를 ‘사회변화의 산물’로 분석한다. 즉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뒤 포기하고 중매 등을 통해 다른 사람과 원치않는 결혼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독신생활의 불편이 줄어들었고 △부모 보다는 본인의 의사가 결혼에 더 중요한 결정요인이 됨에 따라 상대방의 이혼경력이 큰 장애물이 되지 않게 됐다는 것. 이같은 사회변화에 통시대적인 인간본성인 ‘순수한 사랑의지’가 맞물린 결과 첫사랑과의 재결합이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요즘 젊은 세대의 순애보는 남의 가정을 깨는 낡은 세대의 불륜과는 엄연히 다른 형태로 진행된다. 마음 깊숙한 곳에선 첫사랑이 돌아와주길 바랄지언정 이성(理性)과 행동으론 지켜야할 선과 절도를 엄연히 지킨다. 가정의 불화를 부추길 소지가 큰 행동은 극히 자제한다. S기업 사원 이모씨(30). 몇몇 여자와 하룻밤 사랑을 나눴지만 연애감정은 느껴본 적이 없었던 이씨는 4년전 D대학 평생교육원에서 세살 연하인 모 기업체 여사원을 만나 첫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고졸학력 등을 문제삼은 여자 집안의 강력한 반대. 결국 그녀는 공무원과 결혼했다. 그러나 첫사랑을 도저히 잊을 수 없었던 이씨는 최근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연락처를 알아내 다시 만났다. 변함없는 사랑을 재확인한 그녀는 마침내 이씨에게 “남편과 이혼하겠다”는 결심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씨는 아무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고 몇시간을 울었다. 그리곤 “이제 다시는 너를 찾지 않겠다”며 사라졌다. 첫사랑을 되찾기 직전 눈물을 삼키며 첫사랑의 가정을 지켜준 것이다. 〈이기홍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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