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중편소설 심사평]이문열·도정일

  • 입력 1998년 1월 8일 20시 42분


중편 응모작들 중에 예심을 거쳐 결선 탁자에 오른 것은 ‘사과나무에 대한 기억’, ‘새만금 간척사업 소고’, ‘바람의 끝은 어디인가’, ‘그 바다엔 등대가 없다’, ‘회랑의 끝’, ‘바다에서 사막을 만나면’ 등을 포함한 12편이지만 작품들 사이의 역량의 편차가 현저해서 당선권에 넣고 고려한 작품으로는 ‘사과나무에 대한 기억’과 ‘새만금 간척사업 소고’ 두 편이다. 작가다운 문제의식(왜 쓰는가)과 장인적 기술(어떻게 구성하고 표현하는가)은 소설쓰기의 두 가지 기본적 요청이면서 작가가 평생을 두고 탁월성을 추구해야 하는 차원들이다. 신인 공모작 심사 때마다 발견되는 문제는 이들 두 차원에 걸쳐 공력의 균형 투입을 보이는 작품이 극히 드물다는 점이다. 어느 한쪽이 그럴듯하면 다른 한쪽이 기울고, 양쪽이 웬만큼 균형을 잡고 있다 싶어 다시 보면 수월성의 수준에는 못미친다. 작가 지망자들이 소설쓰기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다면 그건 착각이다. 주제의식의 빈곤은 우리의 작가 지망자들이 특별히 유념해야 할 문제이며, 구성력과 소설 산문의 수준도 더 높아져야 하고 기본기량의 연마도 더 필요하다. 특히 이번 결선작들에서 허다히 눈에 띈 것은 기본기량이랄 시점(視點)과 시제(時制)의 통제 결여라는 문제다. 시점과 시제는 흥미로운 소설적 실험이 이루어질 수 있는 기술차원의 하나지만 동시에 그 실험에는 고도의 통제된 기술이 요구된다. 혼란과 실험은 같은 것이 아니다. ‘사과나무에 대한 기억’은 상당한 잠재력을 지닌 작품이면서도 중심서사의 부재로 인한 산만한 구성, 약한 주제의식, 고르지못한 표현력, 시류적 매너리즘에 빠진 듯한 사건 소재 등이 결함으로 지적되었다. 당선작 ‘새만금 간척사업 소고’는 간척사업을 둘러싼 갈등의 제시가 일방적인 대신, 간척지 주민들이 경험하는 세 가지 상실을 상당한 필력과 구성력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가적 역량과 성실성에 깊은 신뢰를 갖게 하는 작품이다. 믿을 만한 역량을 보임으로써 향후 발전을 기대할 수 있게 하는 작품을 고르자는 것이 결선 심사자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던 셈이다. 이문열·도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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