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겹다, 「국제통화기금(IMF)시대」. 허리띠는 졸라매도 밥은 먹어야 산다. 슈퍼의 수입 밀가루는 동이 났지만 쌀은 떨어지지 않았으니 그나마 고마운 일이다. 게다가 연극동네 서울 대학로에는 「더불어 함께 나누어 먹는 밥」이 있어 이 겨울의 위안거리다.
강강술래 소극장에서 공연중인 「밥」. 김지하 원작 임진택 연출로 85년 대학가에서 초연된뒤 올해 우수마당극퍼레이드, 콜롬비아 국제거리극축제, 과천 세계마당극큰잔치에서 4만 관객을 모은 연극이다. 요즘 구경하기 힘든 웃음을 쌀 삼고, 풍자를 콩 삼아 객석 가득찬 손님들에게 따끈따끈한 밥을 지어 퍼주고 있다.
첫째마당 「똥이 밥이다」에서 시작한다. 뭐, 똥이 밥이다? 의아해하는 관객에게 농약 잔뜩 묻은 벼가 톡 쏘듯 일러준다. 『너는 밥은 안먹고 약만 먹고 사니?』
벼에게는 똥, 즉 거름이 밥이라는 뜻이다.
농약 안친 쌀을 팔기 위해 서울에 온 농부는 수세식 변소에 들렀다가 「벼의 밥」이 흙으로 못가고 물에 씻겨내려가는 것을 발견한다. 「뭔가 돌아가야할 것이 안돌아가고」 「개는 고깃국에 밥먹는데 주인은 다이어트한다고 굶으니」 잘못된 세상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둘째마당 「밥이 한울님이다」에서는 밥을 짓고 먹는 행위가 제의(祭儀)처럼 그려진다. 밥 잘먹고 기운차려 신명나게 일하는 것은 중생제도(衆生濟度) 중생해탈에 다름아니라는 메시지다.
셋째마당은 『너나 나나 똑같은 밥이다』라고 주장했다가 유언비어 유포죄로 잡혀온 죄수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남의 밥 뺏어먹는 것』이라고 했지만 사람들은 「너는 내 밥이다」로 거꾸로 알아듣는다. 약육강식, 적자생존의 논리다. 연출자 임진택은 『세상이 많이 바뀌었다고 해도 10여년전이나 지금이나 근본적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생명가치와 공동체문화는 무시되고 부패의 먹이사슬, 물질만능주의만 기승을 부리고 있다』고 한탄한다.
그래서 「더불어 함께 나누어 먹는 밥」을 내건 이 공연장에는 여느 극장과 달리 극이 시작해도 객석에 불이 꺼지지 않는다. 관객도 배우와 함께 장단을 매기고 추임새를 쳐주며 때로는 벼도 되고 소도구도 돼주며 「밥 공동체」로 변화한다.
배우가 『모든게 시계화(세계화)되는 추세인거여』하고 대사를 하자 『염병허네』하는 대꾸가 객석에서 터져나오고 무대에서 경찰분장을 한 배우가 『문민개핵(개혁)!』하면 『웃기네』하고 실소가 터진다.
권태원 박철민 정인기 등 배우들에게는 거칠지만 생생한 생명력이 있고 마당극처럼 등장 퇴장도 없이 관객 눈앞에서 옷을 갈아입는 현장성도 있다. 전통 민중연희처럼 판소리와 탈춤가락 풍물굿도 어우러진다.
두어살난 꼬마부터 노인층까지 다양한 관객. 재미있게 봤느냐는 물음에 한 중년부인은 『오늘 저녁은 밥을 참 맛있게 먹을 것 같다』고 대답했다. 98년1월25일까지 화∼금 오후7시반 토 오후4시 7시 일 공휴일 오후4시. 02―765―8770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