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걷는 길]얼굴연구 20년 조용진 교수

  • 입력 1997년 12월 29일 09시 15분


눈이 작은 사람은 눈이 큰 사람보다 활을 더 잘 쏜다. 카메라로 치면 작은 눈은 단초점렌즈이고 큰 눈은 망원렌즈 격. 단초점렌즈는 가까이 있는 것과 멀리 있는 것을 뚜렷이 구분해낸다. 원근감이 분명한 것이다. 망원렌즈는 그렇지 못하다. 대체로 눈이 작은 한국인은 정확한 원근처리능력을 타고난 셈. 한국인이 눈 큰 서양인을 제치고 양궁에서 세계를 제패하는 것을 이런 배경으로 설명하는 이도 있다. 얼굴만 보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채는 사람. 한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꿈꾸며 20년동안 한국인 얼굴을 연구해온 얼굴전문가 조용진 서울교대교수(미술학·47). 지난달엔 김대건신부의 두개골 측정자료를 바탕으로 김신부의 실제 얼굴을 최초로 복원해내기도 했다. 『눈썹이 짙은 사람은 눈두덩 뼈가 발달해있고 광대뼈가 처져 있습니다. 같은 민요라도 남도민요는 목놓아부르고 서도민요에 콧소리가 많은 것은 위 턱이 큰 호남인, 코허리가 높은 평양도인의 얼굴 모습에서 그 차이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조교수의 직업은 화가다. 화가인 그가 왜 이렇게 얼굴에 매달리는 것일까. 가풍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화가가 되어야겠다고 마음 먹은 조교수. 초등학교 3학년 시절, 『화가는 해부학도 알아야 한다』는 선생님 말씀이 그의 가슴에 칼날처럼 와닿았다. 불과 10세의 어린 나이에 「그림과 해부학」을 천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었다. 홍익대 미대에 들어가자 그는 틈나는 대로 해부학을 공부했다. 동물을 직접 해부해 그 해부도를 그리고 뼈 표본을 만들기도 했다. 물론 좋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였다. 징그럽고 무섭지는 않았을까. 『징그러움을 누를 정도로 호기심이 많은 편이었죠』 미대를 졸업하던 72년, 조교수는 가톨릭의대에 해부학 조교로 들어가 7년동안 도제식 교육을 받았다. 미대 대학원을 다니고 미술 강의를 병행하면서도 내내 흥미를 잃지 않았다. 힘든 줄도 몰랐다. 해부학에 대한 관심이 얼굴연구로 이어진 것은 의대 말년이던 78년. 우연히 서울의 한 백화점에 들른 적이 있다. 매장을 걸어가는데 한 점원이 일본어로 인사를 건넸다. 일본인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3백년 종가집 토종 한국인인 조교수를 왜 일본인으로 본 것일까. 『얼굴로 국적을 식별하는 기준은 과연 무엇인지, 대체 한국인답다는 것은 무언지, 이를 규명하고 싶었습니다』 한국인 얼굴을 세방향에서 실물과 똑같이 촬영을 한 뒤, 얼굴 전면뿐만 아니라 귀에서 여러 측면부위까지의 거리 등 총 70여군데의 수치를 측정했다. 사진촬영은 주로 날씨 좋은 5월에 했다. 기온이 떨어지면 얼굴이 오그라들기 때문. 이밖에 일본 중국 태국 중앙아시아 그리고 이집트 영국 이탈리아인 얼굴까지 촬영했다. 한국인 얼굴 특징을 알아내려면 다른 민족과의 비교가 필수적이기에. 이렇게 찍은 얼굴사진은 족히 4천여장. 이 작업은 지금도 진행중이다. 조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감성공학 등에 적극 응용되기를 기대한다. 설문조사를 통해 「상냥하다, 친절하다, 수학선생님 같다」는 등의 특정이미지 얼굴을 추출한 뒤, 각종 자료를 이용해 그에 맞는 완벽한 얼굴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본격적으로 얼굴연구에 뛰어든지 20년. 조교수는 나이 오십을 인생의 전환점으로 생각한다. 앞으로 2년 남았으니 2000년. 그때 자신의 연구결과를 책으로 내고 한국인얼굴의 모든 것을 보여주는 방대한 전시회를 마련할 계획이다. 그리곤 그림 창작에 전념하려 한다. 하지만 「끝없이 변하는」 사람의 얼굴이 그를 그냥 내버려둘지는 아무도 모른다. 얼굴이 변하는 한 얼굴연구의 완성이란 있을 수 없기에.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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