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서정주詩, 독자투고 작품이 「실수」로 햇빛

  • 입력 1997년 11월 29일 08시 37분


「빙열이 툭툭 터지는 겨울 강을 건너 한국문단의 성(城)에 결코 잠들지 않을 일군(一群)의 앙팡테리블이 진주해왔다」. 80년대 중반에 나온 한 신춘문예당선작품집은 젊은 당선작가 시인들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무서운 아이들」의 사연은 많기도 하다. 독자투고작품이 신춘문예 응모작으로 잘못 분류돼 당선된 시인 서정주. 예심에서 낙선작으로 분류됐다가 우연히 담당기자의 눈에 띄어 부랴부랴 본심에 합류해 당선된 소설가 박범신. 한번만에 당선된 시인 정진규. 15년 내내 본심에 한번도 오르지 못한 채 결국 잡지로 등단한 소설가 심상대. 가작이 성에 안차 5년 뒤 당선으로 다시 입성(入城)한 시인 송기원. 중복투고작 동시당선으로 논란 끝에 한쪽을 취소당했던 소설가 함정임. 같은 해 두 신문에 당선돼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시인 오태환. 그리고 남들은 한번도 어려운데 시 소설을 오가며 두번이나 영예를 누린 정호승(동시를 포함하면 세번) 김승희 이승하 등. 그 많은 당선자들중 신춘문예가 아니었으면 우리가 만나지 못했을 법한 문인은 누구일까. 우선 서정주 이문열이 눈에 뜨인다. 1936년 동아일보에 투고했던 서정주의 시가 신춘문예 응모작으로 잘못 분류되는 「실수」, 그 필연적인 우연이 없었더라면…. 그후 다른 경로를 통해 그의 천품은 살려졌겠지만 그것도 장담할 수 없는 일이다. 이문열은 79년 서른두살의 늦은 나이에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그의 젊은날이 고뇌와 방황으로 점철됐음은 익히 알려진 사실. 그때 당선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자신을 더욱 숨기지 않았을까. 「지금도 대구매일신문에서 교정쇄를 읽고 제목을 달고 있을지 모른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 84, 85년은 시부문에서 신춘문예의 문학적 위력이 유감없이 발휘된 경우였다. 안도현의 「서울로 가는 전봉준」, 정일근의 「유배지에서 보내는 정약용의 편지」, 오태환의 「계해일기」 「최익현」 등 역사적 인물을 통해 현실을 돌파하려는 시들이 대거 당선, 한 시대의 문학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다. 이것은 1월1일 한꺼번에 전국 곳곳의 독자를 찾아가는, 신춘문예의 「동시다발성」이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러나 한두편으로 작품을 뽑다보니 습작경험 등 역량이 부족한 응모자가 당선돼 끝내 잊혀져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에 대한 반발인지, 최종심에서 수차례 탈락했던 비운의 「문청(文靑)」들이 개인적 혹은 공동으로 「낙선작품집」을 펴내는 일도 생겨났다. 〈이광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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