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위기-기회 논쟁]조희문/내실없는 화려함만…

  • 입력 1997년 11월 19일 07시 34분


《영화가에 「한국 영화 위기론」이란 유령이 떠돌고 있다. 영화 제작 편수는 해마다 줄고 제작비는 끝없이 오르고 있다. 대규모 국제 영화제들에서 아시아 영화 특히 일본 영화의 화려한 부상은 우리 영화를 더욱 초라하게 한다. 영화평론가협회와 영화인협회 등 영화인 단체들은 오늘의 상황을 한국영화의 「총체적 파국」이라 진단, 극복 대책을 논의하는 세미나를 마련하고 있다. 과연 한국 영화는 위기인가. 현장에 있는 두 사람의 논쟁을 싣는다.》 한국 영화의 위기론이 확산되고 있다. 제작 여건의 악화와 영화 수준의 침체가 예사롭지 않다. 올해 영화계는 국제 영화제를 비롯한 각종 행사가 잇따라 열리고 제작 편수도 60여편 수준을 유지해 외형적으로는 활기를 띤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겉보기와는 달리 제작 여건의 악화와 작품 수준의 저하가 심각한 상태이며 이런 문제점이 쉽게 풀리지 않으리라는 전망 때문에 영화계의 불안감은 커지고 있다. 복합 불황을 겪고 있는 셈이다. 제작 여건의 악화는 자본의 불안정과 직결돼 있다. 최근 한국 영화의 실제 제작자는 대부분 대기업이었다. 찬반 양론이 엇갈리는 가운데서도 안정적인 대규모 자본이 영화계로 유입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이뤄졌으며 적극적인 옹호론을 펴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 제작을 「상품」 논리로만 계산하는 기업의 투자 방식은 다양한 영화를 이끌어내지 못하고 로맨틱 코미디의 범람을 불러왔다. 자본 규모가 커졌음에도 불구하고 제작여건이 안정되지 못한 것이다. 그나마 투자에 비해 이윤 회수가 극히 부진하다고 판단한 기업들의 투자 기피 움직임은 영화 제작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른바 「충무로 자본」이 붕괴되고 새로운 자본주인 대기업마저 몸을 사리는 현실에서 안정된 영화 제작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자본의 공동화 현상은 제작 환경이 불안해지는 가장 큰 요인이다. 작품 수준의 침체는 영화인들의 수준과 열정 문제다. 편수에 비해 특별히 주목할 만한 영화가 드물다. 우리보다 더 어려운 여건의 나라들에서 만든 영화가 세계 영화계에서 주목받으며 새로운 흐름을 형성하고 있는 현실은 영화인들의 반성을 요구하고 있다. 치열한 프로 의식과 열정이 없는 영화만들기로 예술적 성과를 기대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제작 여건의 악화도 결국은 오락적으로든 작품적으로든 관객에게 호소력있는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데서 비롯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최근 한국 영화의 위기론은 영화인들의 자성과 분발을 요구하는 다그침이라고 할 수 있다. 조희문<상명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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