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작가 정두리 『「시의 꽃밭」에서 함께 놀아요』

  • 입력 1997년 9월 27일 08시 53분


▼ 가로등 ▼ 춥다. 신새벽길에 섰는 가로등 호오호 손을 불면 밝던 길이 흐려질라 좋은 일 하기 힘드는구나. 힘들지 않고 좋은 일 하기 더욱 어렵구나. 그래도 내 앞길 밝혀 놓길 참 잘했지. 그새 선잠 깬 아침이 졸린 듯 엿보고 천천히 기지개로 일어서고 있었다. 「작은 거라도 네게는 다 말해줄게」(예림당 펴냄) 중에서 『요즘 동시가 잘 안읽히는 게 속상해요. 반딧불 은하수 시냇물 초승달 등 동시의 「단짝 친구들」이 둥지를 잃어버린 탓도 있지만요. 퐁당 퐁당 돌을 던지려 해도, 「…나물을 씻던」 그 깨끗한 시냇물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잖아요』 그동안 모두 6권의 동시집을 낸 작가 정두리씨(50). 이제 「읽히는 동시」를 써야 한다는 큰 숙제를 안고 있다는 그는 이런 동시도 냈다. 「한 집 건너만큼/커다랗게 내건/새로운 이름표//읽어보렴/‘주차금지’//살갑지 않은/싸늘한 마침표//빗금쳐 놓고/여긴 내 땅이야!/그런 목소리//‘주차금지’/다시 불러 보렴/아무래도 대문 앞에/내걸기는 부끄러운/큰 문패」(큰 문패) 네번째 시집 「우리 동네 이야기」(대교출판)에 실린 동시들은 삭막하게 느껴지는 도회지의 생활 속에서 여리기만 한 동심을 예쁘게 싹틔우려는 노력으로 가득하다. 『흔히 정보화사회니 국제화시대니 하는데, 「단군이래」 어린이들이 이렇게 바빴던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숨가쁜 도시 생활에서 동심을 붙들어 매려면 동시의 소재도 그만큼 「현대화」돼야지요』 그래선지 그의 동시에서는 「문 밖에 내다 논/짜장면 빈 그릇에도/슬쩍 들어갔다 나오고」 하는 「우리 동네 고양이」가 등장하기도 하고, 주인 잃은 폐차를 보고 「누가 이렇게 오랫동안/자기 차를 나 몰라라/내팽겨쳐 두었담//누가 이렇게/커다란 제 물건을 못 찾고/잃어버렸담」이라고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84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데뷔했다. 그동안 새싹문학상을 비롯, 세종아동문학상 한국동시문학상 단국문학상 등 큼직큼직한 상을 많이 받았다. 올해는 「엄마가 아플 때」라는 동시가 초등학교 5학년 국어교과서에 실리는 영예도 있었다. 『동시를 쓸 때는 정말 때묻지 않은 동심으로 돌아가게 돼요. 내 마음의 유리창을 닦듯, 소곤소곤 잠든 내 아이의 숨소리를 듣듯…』 그래설까. 그는 50의 나이에도 아직 앳돼 보인다. 정씨는 요즘 엄마들이 자녀의 시험점수나 입시에는 눈에 불을 켜지만 정작 마음을 살찌우는 동시 읽히기에는 무심한 것 같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동시의 맛을 들이게 하는 것은 엄마 몫이에요. 억지로 책을 읽히고 독후감을 강요하기보다는, 맛난 군것질거리를 나누듯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해야지요. 요즘 「똑똑한」 엄마들이 왜 그러지 못하는 걸까요』 〈이기우기자〉 ▼ 출간 동시집 ▼ 「꽃다발」 「어머니의 눈물」 「안녕 눈새야」(이상 아동문예사) 「혼자 있는 날」 「우리 동네 이야기」(대교출판) 「작은 거라도 네게는 다 말해 줄게」(예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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