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호 서울에서 세계 아동문학 대회가 열렸다. 5일 동안 17개국 56명의 세미나 발표를 듣고, 2백여명의 참가자들과 틈틈이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한 가지 재미있는 결론을 내렸다. 한 나라 아동문학의 수준이야말로 그 나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현 주소가 아닐까 하는.
이를테면 서유럽 쪽 참가자들은 21세기 다문화 시대가 요구하는 국제성 다양성 합리성 등을 어린이 책에서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에 관심을 집중했다.
러시아를 비롯한 구 공산권 국가들에선 도덕적 메시지를 담은 책들, 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새롭게 발견하도록 해주는 「새로운 인간 유형」을 제시한 책들, 삶의 긍정적 측면을 강조한 내용의 동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오로지 「21세기를 살아 나가는데 도움을 주는 작품 창작」이라는 큰 원칙 외에 어떤 고정된 틀도 없다던 대만의 젊은 교수의 얘기엔 가슴이 아팠다. 냉혹한 국제적 현실 속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느껴져서.
그렇다면 우리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침략과 전쟁 분단으로 이어진 역사는 아동문학이 제대로 꽃필 토양이 되어주지 못했고, 경제개발 이후엔 상업성이 어린이 책 시장을 지배해 왔다. 그 밖에도 많은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내가 동화작가라서 그런지는 몰라도 현실의 어두운 면 보다는 밝은 면이 크게 보인다. 역사적 흐름에서 본다면, 경제적 풍요와 안정을 이룬 지금이야말로 질적인 삶을 추구하기에 적합한 시기인 듯 싶다.
이런 때에 어린이 책에 관심을 가지는 어른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희망적이다. 조리있게 내 것을 주장할 능력도, 저항할 힘도 없는 약자의 편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현실적 소란스러움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성숙한 사회가 되어간다는 뜻이 아닐까?
선안나(아동문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