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키드 북 포럼]「일공일삼시리즈」

  • 입력 1997년 8월 8일 19시 46분


그동안 마땅한 읽을거리가 없던 초등학교 고학년을 위한 동화가 나왔다. 비룡소가 일공일삼(10∼13세)시리즈로 기획한 「내 친구는 국가기밀」 「속죄양의 아내」 등. 「내 친구는 국가기밀」. 프랑스 외교관인 아빠는 작은 섬나라의 대사로 부임했다. 이 나라는 경치가 아름답지만 슬프게도 곳곳에 탱크가 서 있는 독재의 땅. 그래도 이곳에서 나는 친구 에밀리오 페레스를 만나 사랑을 느꼈다. 그는 내 질문에 대해 언제나 「국가 기밀」이라고만 말했다. 알고 보니 이름도 가짜였다. 왠지 슬퍼보이는 친구의 눈. 어느날 친구를 따라 장갑차를 탔는데 도착한 곳은 지하 군사요새. 엄청난 일이었다. 스파이로 몰렸고 어쩌면 총살을 당할지도 모를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때 저쪽에서 뚜벅뚜벅 독재자가 나타났다. 순간 독재자를 보고 「아빠」하고 외치는 친구. 아니 사랑스런 내 친구가 독재자의 아들이라니…. 「속죄양의 아내」. 잘못한 사람의 벌을 대신 받아주는 속죄양. 왕이나 왕자도 늘 그를 불렀다. 속죄양은 언제나 높은 동물들을 만났고 그래서 자신이 대단하다는 착각에 빠졌다. 남편의 거만함을 보다못해 아내는 직접 속죄양으로 나섰다. 남편보다 더 그럴듯하게 속죄양 흉내를 냈다. 모두들 놀라 배우가 되어보라고, 노래를 불러보라고 권했다. 아내는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렀다. 그러자 가는 곳마다 속죄는 제쳐놓고 노래만 시킨다. 속죄양에게 분풀이나 실컷 하려던 동물들은 그의 아름다운 노래에 감동해 기분나쁜 일들을 모두 잊어 버리는데…. 〈이광표기자〉 ▼ 전문가 의견 [정은숙(시인)] 흡사 작은 새 두마리를 본 것처럼 경쾌하다. 아담한 크기, 번쩍거리지 않는 표지 역시 싱싱한 야채샐러드처럼 상큼하다. 외교관 딸의 사랑이야기 「내 친구는 국가기밀」과 속죄양의 현실과 꿈을 그린 「속죄양의 아내」는 오로지 글만이 표현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책 갈피 사이사이에 숨기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의 가치는 그저 아름다운 문장 몇 개로 조립된 환상적인 세계가 아니라 우리 현실의 이면을 잘 드러낸 데 있다. 어른들이 정치적 싸움에 골몰하고 공부만 강요할 때도 어린이들은 그 모든 편견과 억압을 넘어 자연 그대로의 감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는 것이 새삼스레 놀라울 뿐이다. [최윤정(문학평론가)] 아이들의 시선은 종종 현실의 정곡을 찌른다. 「내 친구는 국가기밀」이 그렇다. 주인공을 따라가다보면 따끔따끔한 웃음이 독자를 콕콕 찌른다. 어른들이 벌벌 떠는 독재라는 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것인지를 어린아이 특유의 단순하고 직설적인 언어를 통해서 유감없이 보여주기 때문이다. 「속죄양의 아내」는 자신들의 문제를 속죄양에게 뒤집어씌우는 동물들의 폭력, 속죄양이 힘없는 아내를 향해 휘두르는 폭력의 이중구조로 돼있다. 폭력 문제에 대해 섣부른 해답을 제시하려하지 않고 얼버무리려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아름다움에 대한 감동으로 폭력이 스스로 잦아들게 한다는 내용을 통해 묵직한 여운을 남겨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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