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시를 「편안하게」 읽을 수 없는 시대.
이 시집도 예외가 아니지만, 난해함의 안개를 헤집고 얼굴을 내미는 무수한 섹스 이미지들이 낯설지만은 않다.
「입술 앞에 모락모락 김나는 항문」 「붕어 입처럼 옴찔옴찔하는 항문들」 「下衣 아래 감추어져 있던 경련하던 것들…」 등등. 언뜻 90년대의 「문란한」 경향성을 드러내는 듯. 하지만 「성행위 자체보다는, 거기에 바쳐지고 있는 몸의 섬세한 부분들의 운동에 대한 관찰기」에 가깝다(평론가 김주연).
구멍의 이미지에 대한 시인의 집착은 아마도 구멍에서 근원의 역동성을 느끼고 그것에 빨려들어감으로써 이 세상 속에서 지워지는, 실존의 가장 심각한 도박의 순간을 맛보기 위한 시도는 아닐지…. (채호기지음·문학과지성사·4,000원)
〈이기우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