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로 시작한 회사가 자동차를 만들고, 그 사이 부도 두 번을 맞았다. 재기 불가능했던 기아가 지금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과시하고 있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회사의 80년 세월을 ‘파란만장했던 분발의 역사’라고 정의한다.
5일 경기 용인에 위치한 비전스퀘어에서 ‘기아 80주년 기념 행사’가 열렸다. 이날 기아는 이날 원로를 포함한 전현직 임직원 400명을 초청해 지난 여정을 돌아보고 새로운 미래를 그렸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도 자리를 빛냈다.
80주년 환영사를 맡은 송 사장은 “기아는 1944년 창업이래 소하리에 최초 자동차 공장 세우고 대한민국 자동차산업 개척해왔다”며 “애초부터 기술을 발전시켜 국가 성장에 기여하겠다는 사명이 있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품질 및 글로벌 경영을 토대로 고객에 사랑받는 브랜드로 성장했다“며 “80주년의 자축보다는 교훈과 자긍심, 분발의 정신을 되새기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기아는 ‘기아 80년’ 사사를 처음 공개하고 역사적 순간을 되짚어 냈다. 80년 사사는 기아가 현대자동차그룹에 합류한 이후 처음 발간한 역사서다. 1944년 경성정공을 창립한 이래로 두 바퀴 자전거부터 삼륜차와 승용차, 전기차와 PBV까지 기아 성장사를 빠짐없이 넣었다.
사사편찬을 맞은 이장규 고문은은 “정의선 회장의 당부대로 쉽고 솔직하게 쓰는것에 충실했다“며 “자랑스런 성공 역사, 시련과 실패의 뼈아픈 과거도 담아달라는 주문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80년 사사편찬이 임직원 모두가 자긍심을 함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기아 김철호 창업자는 평생을 엔지니어 소명의식 속에서 살았다. 사업도 애국이나 독립운동처럼 열성을 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에 건너가 번 돈을 전부 자전거 개발에 쏟아부은 게 기아의 시작이 됐다. 그는 자전거를 제대로 만들 수 있어야 그 기술을 기반으로 자동차도 만든다’는 철학을 안고 살았다. 하지만 시행착오가 더 많았다. 실패와 자금난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럼에도 김철호 사장이 끝까지 놓지 않은 한 가지는 ‘기술개발 중심 원칙’이었다.
이 고문은 “기아는 두 차례 부도, 12년 은행관리, 법정관리와 3자 인수까지 거치며 기업의 생존 자체가 위협받은 기구한 운명을 반복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공장을 짓고, 은행관리 중에도 신차개발을 멈추지 않는 특이행 행보를 이어갔다”고 회고했다.
긴박했던 기아 인수전 얘기도 나왔다. 1997년 외환위기 당시 기아 인수전은 한국 산업사에서 손꼽히는 사건이었다. 이장규 고문은 “삼성, 포드, 현대자동차, 대우까지 모두 뛰어들었다”며 “결국 인수전은 현대차 승리로 끝났고, 이후 정몽구 명예회장은 강도 높은 통합과 체질 개선을 통해 기아를 단숨에 정상 궤도로 올려놓았다”고 강조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정몽구 회장은 기아를 글로벌 톱5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현대차와의 진정한 시너지를 이끌어냈다”며 “그는 언제나 품질을 강조했고, 해외 공장을 돌아보며 현장을 세심히 챙겼다”고 말했다. 이어 “기아는 사고방식, 조직문화, 정체성을 완전히 새롭게 만들었다”며 “기아는 특유의 저력으로 모든 역경을 넘었고, 그 정신이 미래에도 이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기념 행사가 열린 비전스퀘어 1층에는 기아의 80년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움직임의 유산’ 전시가 마련됐다. 1952년 국산 1호 자전거 ‘3000리호’를 시작으로 1세대 스포티지·카니발 등 기아의 성장을 상징하는 17대의 차량이 전시됐다.
전시는 김철호 창업자의 도전 정신을 주제로 한 ‘바퀴와 유산’, 봉고에서 PBV ‘PV5’로 이어지는 고객 중심 혁신 스토리를 담은 ‘진화와 유산’, 글로벌 생산·판매 전략을 중심으로 세계 시장으로 뻗어나간 기아의 여정을 보여주는 ‘개척과 유산’ 등 총 8개 공간으로 구성됐다.
특히 ‘사람과 유산’ 공간은 품질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철학을 강조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리더십과 스포티지·카니발의 장수 비결을 함께 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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