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2002년전 예수님의 아들' 다시 보기

  • 입력 2002년 7월 12일 17시 38분


미스테리아 봄철 축제, 디오니소스의 상징물을 나무에매다는 것을 표현한 작품
미스테리아 봄철 축제, 디오니소스의 상징물을 나무에
매다는 것을 표현한 작품
◇예수는 신화다 / 티모시 프리크외 지음 승영조옮김 / 462쪽 1만2000원 동아일보사

프리즘이 만들어져도 무지개는 여전히 아름답다.

교회를 떠난 지 오래간만에, 참으로 오래간만에 교회에 가 보았다.

예배 보러 간 것은 아니다. 결혼식이 마침 거기서 있었다. 오래간만에 사회자가 시키는 대로 앉았다 일어섰다 해 보았다. 별로 불편하지 않았다. 인간의 결정적인 꿈과 진실을 찾아 헤매는 나에게 교회는 참으로 낯익은 곳이다. 예수님을 그린 거룩한 그림도 여러 점 보았다. 신화와 고대 종교사를 공부하는, 그래서 종교가 진화해 온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하는 사람에게 그런 그림은 아주 낯익다. 예수님 오시기 전에도 그런 그림은 무수히 그려졌다.

‘예수는 신화다’는 제목부터 전율을 안긴다. 원제 ‘더 지저스 미스테리스·The Jesus Mysteries’ 보다 더 충격적이다.

그런데 옮긴 이가 책의 들머리에서 화를 내고 있는 듯 한 것이 조금 우습다.

‘…고대 그리스·로마 인들은 그리스·로마의 신들을 믿지 않았다(물론 이것은 옮긴 이의 과장어법이다)…오늘날 그리스·로마 신화를 유포하는 신화학자라는 사람들 가운데 그것을 아는 자는 많지 않은 것 같다.

고대 그리스·로마 민중들이 자발적으로 열렬히 믿은 신화는 따로 있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그 신화를 얘기해 주는 그리스·로마 신화 서적을 역자는 본 적이 없다(과문한 탓이겠지만)…’

고대 그리스·로마 인들이 그들의 신을 믿지 않았다는 주장은 옮긴 이가 고백하고 있듯이 ‘과장’이다. 고대 그리스·로마 민중들이 믿은 신화를 얘기하는 서적을 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도 옮긴이가 고백하고 있듯이 ‘과문한 탓’이다.

반세기 전에 쓰여진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보라. 같은 저자의 저서 ‘서양 신화’(‘신의 가면’시리즈Ⅱ)를 보라. 신화와 종교는 홑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든, 어떤 문화권이든, 겹으로 존재하면서 한 쪽이 다른 쪽을 박해하는 법이다.

물경 450쪽에 이르는 이 책의 공동 저자가 기독교에 상처를 줄 목적이 아니라면서 펼치는 주장은, 고대의 ‘미스테리아’에서 시작된다. ‘미스테리아’는 ‘비의(秘儀)’, ‘밀의(密儀)’ 쯤으로 번역되는 일종의 밀교 의식이다. 미스테리아의 핵심에는 죽어서 부활하는 신인(神人)의 고대 신화가 있는데, 이 신인은 지역에 따라 오시리스(이집트), 디오니소스(그리스), 아티스(소 아시아), 아도니스(시리아), 바쿠스(로마), 미트라스(페르시아)라는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이 책의 공동 저자는 이들을 일단 ‘오시리스-디오니소스’라는 단일한 이름으로 부르며 이 신인의 충격적인 모습을 그려낸다.

저자들에 따르면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다. 아버지를 하느님으로 인간 처녀(동정녀)의 몸에서 태어난 그는, 세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나고, 믿는 자들로 하여금 세례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주고, 결혼식장에서 물을 술로 바꾸는 기적을 보이며, 세상의 죄를 대신 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고,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한다.

저자들의 주장에 따르면 예수는 실재했던 유태인이 아니라 오시리스-디오니소스 유형으로 날조된 인물이며, 교회는 이것을 은폐하기 위해, 오시리스-디오니소스 미스테리아를 인류의 역사에서 지워 버렸다는 것이다. 충격적인가?

이 주장 자체는 그렇게 충격적인 것이 아니다. 신화나 종교사의 전문가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인이나 유럽인들도 충격을 받을 것 같지 않다. 정말로 충격적인 것은, 성경에 쓰여진 것은 한 마디도 의심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고, 많은 사람들이 이 가르침을 그대로 믿는 우리나라에서 이 책이 번역·출간되었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여기까지 왔구나 싶다.

이교(異敎)의 신화와 상징을 광범위하게 수용, 민중에게 낯익은 모습으로 그리스도를 윤색했다고 해서 초대 교회에 죄 줄 것은 없다. 종교는 그런 것이다. 문제는 사람들이 종교의 어떤 층위를 믿음으로 수용하는가 하는 점이다. 나는 그리스도를 사랑한다. 나는 그리스도를 보편적인 구세주 오시리스-디오니소스로 사랑하는 만큼, 이 책의 주장은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을 조금도 훼손하지 못한다.

이윤기(소설가·번역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