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새 산문집 '향기로…' 출간한 이해인수녀

  • 입력 2002년 6월 6일 23시 08분


《민들레 솜털처럼 온 세상으로 날아간 그의 글은 외롭고 힘든 사람들의 마음에 내려 앉아 희망의 씨앗이 된다.

이해인 클라우디아 수녀(올리베따노 성베네딕도 수녀회·57). 최근 출간한 산문집 ‘향기로 말을 거는 꽃처럼’(샘터)도 온 세상으로 날아가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지난주 신간 출간으로 부산의 수녀원에서 서울로 올라와 수유리에 있는 오빠 이인구 교수(서울예대·광고창작과)의 집에 잠시 머물고 있던 이해인 수녀를 만났다.

해인수녀는 목이 한참 잠겨 있었다. 독감으로 몸이 좋지 않은데다, 최근 연세대(원주캠퍼스) 채플시간에 강사로 초대돼 3시간에 걸쳐 강의를 하느라 다소 무리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북한산이 여느 때보다 좋아 보인다”며 사방 가득 펼쳐진 초여름의 자연을 한껏 누리는 모습이었다.

“하나님의 좋으심, 선하심을 나눈 향기로운 시간이었어요. ‘수녀가 하는 얘기, 다 뻔하겠지’라며 삐딱한 눈으로 보던 학생들이 마음을 열더라구요. 채플이 끝나고 저와 얘기를 나누려고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어요.” 》

# '시인 수녀' 보다 '수녀 시인'이고 싶다

“제 글을 읽고 교도소에서 편지가 많이 와요. ‘이해인’이라는 시인보다는 정신적으로 기댈 수 있는 한 수도자에게 전하는 마음 같아요. 몸은 수도원 안에 있지만 글을 통해 이뤄지는 만남이 참으로 귀하지요. 종파를 초월해 꿈과 격려를 줄 수 있어서 감사해요.”

안양교도소의 한 재소자는 ‘당신은 엄마 잃고 혼자 길 가는 아이의/ 콧물 훔쳐주던 누님/ 비포장 도로의/ 비에 젖은 이정표입니다 …’라고 쓴 편지를 보냈다.

“‘글을 쓰는 것’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마음 밑바닥에 있는 영혼, 순결에 대한 그리움을 건드리는 것이죠. 독자들이 제 시를 사랑해주는 것은 곱기 때문만이 아니라 진실과 순수를 향해 가는 마음을 함께 나누고 싶기 때문일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어려움을 호소하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러나 이해인 수녀 한 사람의 두 손으로 그 수많은 손을 다 잡아주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의 글은 위로와 사랑을 전하는 ‘좋은 도구’가 된다.

“삶 자체를, 사람 하나하나를 시라고 생각해요. 또 아침 점심 저녁, 시를 통해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자의 역할을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드리죠. 늘 세상에 작은 기쁨과 평화를 주는 작은 천사가 되고 싶어요.”

# 이명숙(李明淑)과 이해인(李海仁), 클라우디아(Claudia)

오리진스

“예비자로 있을 때, ‘이해인’이라는 이름으로 가톨릭 잡지에 글을 실었어요. 의도적인 필명이라기 보다는 제게 어떤 상징과도 같은 것이었죠. 늘 마음을 넓혀가야 한다는 의미에서 넓음의 상징인 바다를 뜻하는 해(海)자를, 사랑과 어진 마음, 자비를 담은 어질 인(仁)자를 썼지요.”

수녀로 서원할 때 삶의 지표로 삼은 성서 구절은 루가복음 10장 42절. ‘실상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 이름이 알려진 수도자로서 유명세를 치러야 하거나 마음이 번잡스러울 때 중심을 잡아주는 말씀이다. 예수님이라는 별만 따라가면 된다는 것.

1980년대 갑자기 ‘세상의 인기’를 얻으면서 가던 길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는 해인수녀는 ‘기도의 힘’이 자신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수도자가 유명해져서…’, ‘저러다 일 나지’(웃음)라고 걱정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인기와 명예가 수도 생활에 걸림돌이 된적도 있지만 삶의 유한함과 허무를 체험하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도록 했던 측면도 있거든요. 골방에 혼자 앉아 기도하지만 기도의 힘은 나비처럼 날아 사방에 흩어져요.”

이해인 수녀는 “돌이켜보니 ‘깊은 기도의 우물’에 잠겨 마음을 씻어낸 뒤 제자리로 돌아올 때마다 한 편의 시가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불같은 뜨거움이 물같은 담담함으로’ 세월과 더불어 승화했다는 이해인 수녀는 모든 일을 담백하게 볼 수 있는 ‘평상심’을 지닐 수 있는 나이가 이제 된 것 같다고 했다.

“수녀(修女)라는 말이 난 참 좋아요. 닦는 여자, 닦아가는 여자.”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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